정법. 듣고 쓰기

정법 실천 중 제일 어려운 '알고도 몰라라' 10585강

공부생 2021. 12. 8. 22:08
728x90

현재시간 9시 36분, 라면을 먹었다. 

 

 

라면을 먹으며 정법 한개를 들었다. '백치미와 맑음의 상관관계'에 대한 질문인 것 같았다.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맑음'에 대한 기준과 답을 풀어주셨다.

 

 

나는 내 얼굴이 맑다고 생각했다. 평소 잘 웃고,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를 안하기 때문이다. 단지 그게 근거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법을 듣고, 그 기준이 많이 깨졌다. 10585강의 중간부를 듣는 즉시, '나는 탁하구나'라는 것이 직감왔다.

 

 

그 이유가 뭘까? 정법에서는 말한다. '맑음의 기준은, 사람을 의심하느냐? 존중하느냐? 에 달려있다'라고. 이 말을 듣고, 나는 내가 그 기준에 미달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매일 사람을 볼 때, 거의 의심에 찬 마인드로 본다. 사람에 대한 궁금증과, 위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자 하는 심리기제일 것이다.

 

 

 

나는 스스로 '사람을 존중해야지'라고 다짐한다. 어제 글에서도 그 점에 대해서 썼었다. 그런데 나는 사람에 대해 불신하는 면이 있다. 그간 많은 심리학 서적을 읽으며, 인간 본성에 대해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성 뿐만 아니라, 본성과 기저 욕구에 있는 어두운 면까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과연 진정 인간을 알았던 것일까?

 

 

 

여기서 모순이 생긴다. 진정 인간을 안다면, 그 사람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왜? 의심이란 '의구심'이다. 물을 '의'를 쓴다. 사람을 아는데, 뭘 물어보고 말고 할 것이 있단 말인가? 이는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에, 의심하는 것이겠다. 더 제대로 알아보고자, 살피고자 하는 마음에 '의심'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가끔 정법을 듣다 이런 생각이 든다. '스승님은 문리를 깨친 분이다. 그렇다라면, 눈 앞에 있는 사람, 군중, 외부 환경까지 모든걸 꿰뚫어 보고 계실텐데.. 어려운게 뭔지?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말을 하는지? 모든 것이 다 보이실텐데, 왜 질문을 듣는 것일까?'

 

 

나는 이 질문을 던지며, 스승님이 정말 무서운 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알면서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무서운 일인지, 나는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모르면 무섭다. 그럼에도 질문 받는 이유를 추론해보자면, '노력의 여부를 보기 위해'가 아닐까 싶다. 직접 본인의 입에서, 얼마나 솔직한 말이 나오는가? 얼마나 스승님을 신뢰하는가를 확인하는 여부(시험지)가 되겠다.

 

 

법문 후반부로 가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알고도 몰라라'

 

알고도 몰라라. 이는 3년 전, 내가 처음 정법을 접했을 당시, 들었던 법문 제목이다. 알고도 모른다는 것. 왜 알고도 몰라야 하지? 나는 그 이유를 그 때는 몰랐다. 이번 강의에서, 설명하시길 "내가 아는 것은, 진정 아는 것이 아니다. 내 귀에 어떠한 말이 들린다면, 분명 겉커풀만 알기 때문이다. 알고도 모르는 채 들어야, 그 속의 속까지 알 수 있다. 모든 것은 3단계이기 때문에, 속 깊이까지 들어가지 않고는 모르는 것에 불과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알고도 몰라야 할 이유'를 알았다. 아니 알았다고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진정 알았는가를 따져본다면, 내일 아침 어떤 말이 들렸을 때, 나의 태도에서 결정될 것이다. 진정으로 안다면, 무의식적으로 "아 그거 내가 아는거야"라는 말이 튀어나오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옛날 최00씨를 만났을 때가 생각이 난다. 그 사람과의 만남은 평범한 만남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능력을 갖고 있었고, 나는 그 사람을 신기해했다. 그 분은, 엄청나게 겸손하셨다. 생각해보면 그 분 앞에서 아는 척도 많이 했다. 시간이 흐른 후,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결국 아는 것인데 묵묵히 들었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나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내가 무안할까봐 계속 들어준건가?'

 

 

아는데도 불구하고 듣는 것. 상대의 말을 끊지 않는 것과 같은 소리이겠다. 상대의 말을 끊으면서, '알면서 몰라라'를 실천할 수는 없다. 알면서 모르는 것은, 나의 공부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대를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 아니 존중.(배려와 존중은 다르다. 배려는 선택이지만 존중은 의무다)

 

 

흔히 나는 '안다'의 휴리스틱에 빠지곤 한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내가 주로 많은 사람들에게 느끼는 오류가, 바로 이 오류다. 인터넷 댓글들을 봐도, 내 눈엔 온통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밖에 보이지 않는다. 즉,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고정관념만 가득차있는 '헛소리'를 말한다.

 

 

 

나는 이 '헛소리'들에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무시하거나, 아예 귀를 돌려버린다. 시간낭비되는게 싫어서다. 그런데, 그 행위가 나의 또다른 모순이었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상대방의 오류를 보면서, 내 오류를 발견하지 못하는 꼴 아니겠는가?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를 보고 비웃는 격이다.

 

 

가끔, 나는 이런 '깨짐'을 느낀다. 반성을 하다보면, '아 내가 이런 모순이 있구나'라는 것을 느낀다. 작게 느낄 때는 '고쳐나가는 뿌듯함'을 느낀다. 그러나 큰 모순일 경우, 인정하고 싶지 않아지기도 한다. 걸리는 것이다. 다시 오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확실한 대안을 세워놓아야겠다. 

 

 

 

'알고도 몰라라'를 어떻게 실천할까? 

 

1)'알고도 몰라라'를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깐다

 

2)오늘 강의를 견지하려 노력한다

 

 

 

주로 실천적인 방안은 위 2개가 떠오른다. 더 명확히 기억하기 위해, 정리를 해보자면 'ㄱ아는 척하는 것은 명확히 모른다는 반증이다 ㄴ알고도 몰라야 공부가 되는 것이다 ㄷ시험지는 계속 들어올 것이다' 로 묶어볼 수 있겠다.

 

 

나는 모른다. 모르니까 공부하는 것이다. 상대가 잘난 척 하더라도, 나는 그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그게 내 공부다.(매우 힘든 공부인 것은 인정)

 

 

 

결론 -

 

1. 아는 척 하는 것은 명확히 모른다는 반증이다

 

2. 알고도 몰라야 공부가 된다

 

3. 시험지는 계속 들어온다

 

 

10585강

https://www.youtube.com/watch?v=J6Awx8bPKgo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