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현재시간 3시 55분, 걸으면서 정법을 들었다.
방금 들은 것은 '겸손과 비굴'에 관한 주제다. 오늘 들은 내용은, 조금 새로웠다. 내가 아는 겸손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었다.
1. 겸손한 인사법?-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한국인들은 인사할 때, 360도로 하면 안됩니다. 그건 모자란 사람들이나 하는 행동입니다. 지식인들은 절대로 비굴해서는 안됩니다." 너무 웃겼다. 360도라니.. 푸하하. 나중에 90도라고 정정하셨다. 역시 정법은 듣다보면 빵 터질 재미 요소가 있다.
인사를 90도로 굽혀서 하는 것은, 비굴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분명 내가 모자라고, 상대에게 바라는게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계속해서 인사를 90도로 하는건, 습관적으로 비굴해지는 것이라고 하셨다. 안좋은 습관이라고 덧붙이셨다.
나는 과거 00 선생을 따라다니며, 겸손을 배웠다. 주제가 겸손이었고, 겸행의 첫번째가 '인사 90도로 하기' 였다. 나는 그 때 당시, 90도로 인사를 1년 반 정도 하고 다녔다. 그러자, 사람들이 좋게 봤다. 또한, 부담스러워 하는 분들도 계셨다. 그런 시선이,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내가 니들보다 훨씬 더 배운 사람이야'라는 묘한 우월감도 있었던 것 같다.
다시 생각해봐도, 그 때 당시의 나는 가식적이었던 것 같다. 인사는 90도로 하면서도, 마음 속에선 또 다른 교심이 차있었기 때문이다. 인사를 90도로 하거나, 절을 하거나, 무릎을 꿇는다라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내리고, 굽히고, 꺾는 행위라고 하셨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그런데, 인사는 90도로 해놓고, 다른 것들은 그렇게 꺾이질 않았던 것이다. 이는 속과 겉이 다른 이중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스승님의 말씀에 즉시 공감이 갔다. 위와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라고, 상대에게 교만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단, 과도하게 인사를 꺾어, 상대를 부담스럽게 하는 행위 또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과공은 비례다')
2. 겸손의 바른 법칙?-
생각해보면, 나는 겸손을 몰랐던 것 같다. 그저 '상대 앞에서 예절 바르게 대하는 행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정법을 배우고 난 후로는, 이렇게 생각이 달라졌다.
'과거 생각 - 겸손이란, 나를 낮추고 상대방에게 예절을 다하는 것이다.'
'지금 생각 - 상대방을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것이다.'
언뜻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다. 과거 생각의 중심은 나-50%, 상대-50%다. 그러나 지금 생각에서의 중심은, 상대 100%다. 즉, 상대에 맞출 수 있는 실력이어야, 겸손할 수 있다는게 된다. 너무 어렵나?(내가 맞게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다)
이런 내용도 있었다. '겸손한다고 3번 이상 사양하면 안된다. 2번까지는 겸손이 되지만, 3번은 거절로 들어간다. 또한, 실력을 알기 위해서는, 1번 쯤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적합하다.'
이 또한,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다. 내가 '사양지덕', '겸손지덕'으로써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리라. 이 사양과 겸손의 심리를 나는 잘 알고 있다. 나 스스로가 이중심리를 갖고 겸손을 행했기 때문이다.
한 편으로는, 그런 이중적인 내가 싫었다. 진짜로 겸손하고 싶었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다 '친절'을 베풀고 다녔다. 그러자, 사람들은 나를 만만하게 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세상을 몰랐던 것 같다. '만만하게 볼 인간'이 정확하게 '겸손떠는 인간'을 달아본 것이다. 그런 일이 정확히 나에게도 일어났다. '이래도 겸손할 것이냐?' 라고 자연이 나에게 묻는 것만 같았다.
3. 겸손 페르소나-
언제부턴가 '겸손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놓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피곤해서다. 사회적인 나, 즉 가면을 벗어던지는 듯한 기분이랄까? 차라리 편했다. 그런데도,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보이기는 여전히 싫다. 단지, 다른 사람에게서, 어떠한 긍정적 이미지메이킹하기를 포기했다는 것에 더 가깝다. 언제까지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을 표현하며 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런 것들을 보고 '사회 생활'이라고 말한다. 즉, 나가 아닌 사회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포장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나, 우리는 연예인들을 통해 많이 보아왔다. 공황장애 오고, 자살하고, 우울증 걸리고 하는 모습들이 결코 정답처럼 보여지진 않는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내 맘대로, 맘 편하게, 솔직하게 살자!'의 심리가, 현재 대한민국 주류 문화인 것 같다.
해답은 무엇일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까? 다시, 나를 사회에 맞추고 포장해야 하는걸까? 아니면, 나 스스로의 솔직함을 그대로 사회에 드러내며 살아야 하는걸까? 사회로부터 받고 싶은 인정 욕구을 포기한 채로 살아야 하는걸까? 추구하면서 살아야 하는걸까?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내 자리에서 눈 앞의 상대를 존중하자'는 생각만 가질 뿐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법. 듣고 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법과 생각의 질량 (0) | 2022.01.06 |
---|---|
정법과 다큐멘터리. 청년, 노인 문제의 공통점 (0) | 2022.01.05 |
정법, '돈 욕심 내지 마라' VS '30%까지는 돌아보지 말고 갖춰라' (0) | 2022.01.03 |
정법과 함께한 2021년. 2022년의 다짐은 '갖춤' (0) | 2021.12.31 |
정법, '공부를 한다'를 이렇게 이해하는게 맞을까? (0) | 2021.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