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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시간 5시. 샤워를 마쳤다.
오늘도 걸으면서, 정법을 10개 정도 들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게 있다면 뭘까? '갖춤'이 되겠다. 오늘 주제는 '갖춤'으로 해서, 한 번 생각 정리를 해야겠다.
1. 올해 다시 정법을 만남-
나는 올해, 나름의 목표를 세웠다. 온라인 비밀번호를 죄다 그 목표로 바꿨다. 그리고, 수 개월이 지났을 때, 그대로였다. 6개월이 지났음에도, 나의 목표는 이뤄지지 않았다. 전력을 다하지 않은 탓일까? 애초부터 방향이 잘못 되었던걸까?
나는 답답해서, 정법을 찾았다. 사실, 난 정법을 수개월째 안듣고 있었다. 주변에서 반대도 있었고, 또 스승님의 말 속에 이상한 부분이라고 느껴지는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법은 나의 한 켠에 고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맞는게 더 많았어!'라는 무의식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정법을 찾고, 미친듯이 들었다? 왜일까? 너무 힘들어서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다. 어떻게 하는 일마다 안될까? 내가 잘못된걸까? 무엇이 잘못된걸까? 나는 정법을 미친 듯이 듣기 시작했다. 답을 찾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올해 말까지, 계속해서 듣고 있다. 지금은 하루 10개 이상씩은 꼭 듣는다. 안듣고는 가슴 중앙부에 고통이 오기 때문이다.(이건 진짜다)
그렇게 올해, 나는 정법을 가장 많이 들은 해가 되었다. 아마 2017~8년 쯤, 정법을 처음 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거의 생존을 위해서 듣는다. 올해 들었던 정법 중, 기억에 남는 키워드가 있다면 무엇일까?
'갖춤'이 되겠다.
2. '갖춤'의 해석(필자)-
현재 나는, 정법을 들으며 갖추는 중이다. 책을 통해 갖추는 중이다. 또 놓았던 외모 관리 또한, 다시 하려고 하는 과정이다. 이 모든 것을 한 단어로 '갖춤'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갖춤'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전혀 없었다. 그냥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태권도에서 말하는 '하면 된다. 할 수 있다' 따위의 관념에서 살았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실제로, 책이나 사회에서도 '노력', '의지'의 중요성을 말한다. 나는 항상, 이런 말들만 들어왔었고, 한 번도 다른 의심은 해본 적 없다. 그렇게 산지 어언 30년.. 내 인생은 무언가 잘못 굴러가기 시작했고, 정법은 '갖춤을 해라', '먼저 갖춰라'라고 말했다. 그 말이 지금에서야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갖춤이란 무엇일까? 모자람을 갖추는 것이다. 모자람이 전제가 되니, 갖춤이 필요하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스스로를 '모자라다'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 결핍 상태임에도, 지식이 없음에도, 학력이 없음에도, 체력이 없음에도, 외모가 뛰어나지 않음에도, 항상 나는 갖추려는 마음이 없었다. 모자람을 모자라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의 나를 불러온 화근인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대체 왜 이렇게 흘러간 것일까? 아무래도, 자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사람들을 많이 보고 경험해야 하는데, 그것을 피하고 홀로 생각에 갖힌 것. 그러다 보니, 스스로의 모습을 거울로 보지 못한 것 같다. 모자란 나 자신을 보기 두려워했달까? 이 모든 것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도무지 갈피를 못잡았던 것 같다. 아예 개념이 없었달까? 아마 술 중독, 담배 중독에 빠진 이유 또한, 나 자신을 외면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다른 사람들도 그런 이유일까?)
'나 자신이 모자라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깨달음이다.'
3. 깨달음과 반성-
올해에 정법을 듣다가, 위의 말이 들려온 적 있다. 나는 좀 황당했다. '스님들이나 수도사들이 깨달음을 위해 그렇게 갈구하는데.. 고행하는 분들이 깨달음을 얻으려고 그렇게 분신까지 하는데.. 결국, 깨달음의 원 목적이 모자람을 깨닫는거라고?..' 나는 조금 황당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생각해봤다. '그래.. 스님들 치고, 겸손하지 못한 분을 꽤 많이 봤었지.. 신도들에게 반말하거나, 인성적으로 쓰레기인 분들을 많이 봤어.. 신부님도 마찬가지도 목사님도 마찬가지야.. 이 분들이 스스로의 모자람을 깨달으시면, 훨씬 더 발전하실 것은 맞다.'
정말, 깨달음의 목적이 '내 모자람을 깨치는 것'일까? 정법 중에 틀린 법은 없다. 만인만법은 곧 진리이다. 나는 그것을, 지난 세월 동안 나도 모르게 증명해봤다. 정법이 틀린 말을 할리 없다. 그런데 너무도 '허탈하다'랄까? 나 또한, 깨달음을 위해 명상도 하고, 나름 수행이라는 짓도 해봤다. 그런데 결국, 나의 모자람을 깨우치기 위한거였을까?
사실, 말이 된다. 명상이 무엇이었던가? 정좌하고 눈을 감는 행위가 아니던가? 종교에 따라, 묵상, 관상, 명상, 참선, 간화선, 위빠사나, 요가 등등의 행위를 한다. 그러나, 명상이라 함은, 통상 ㄱ눈 감고 ㄴ앉아있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과거의 일'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이건 내 의지가 아니다. 뇌가 저절로 '과거의 일' 또는 '미래의 일'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도, 명상 지도자들은 '현재에 집중하세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이 때부터 나는 뇌와 씨름을 하게 된다. '과거 일을 곱씹으려고 하는 무의식 VS 현재에 집중하려는 의지'와 한 판 승부가 벌어진다. 그러나, 통상은 무의식이 이긴다. 즉, 과거를 계속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싸움을 지속하다보면, 지치게 된다. '그래. 잡념아. 네 마음대로 한 번 떠올려봐라' 하고 내려놓게 된다. 그 때, 비로소 '관조'가 일어난다. 생각 관조가 있는 그대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면, 곧바로 깨닫는다. '아... 내가 지금까지 무엇 무엇을 하려고 했구나.. 인위적으로 의지를 가졌구나..'하고 말이다.
나는 잡념이 잡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뇌는 끊임없이 '반성거리'를 통해 공부를 제시한다. 그것을 잡념으로 보느냐, 아니면 풀어야 할 화두로 보는가는 선택의 문제다. 나는 전자로도 삼아봤고, 후자로도 삼아봤다. 전자로 삼았을 때, 언제든 고개를 쳐들 준비가 되있는 '싹'으로 남는다. 후자로 삼았을 때, 비로소 내면의 고통 속의 나와 마주하게 된다. 정말 어렵고도 두려운 작업이다.
중요한 건, 그 와중에 반성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반성이란 무엇인가? 내 잘못을 깨닫는 행위이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반성을 해야 한다. 반성은 지혜를 낳는다. 반성을 했을 때, 행동이 바뀐다. 나는 이 반성을, '내 모자람을 깨닫는 것'에 갖다 대고 싶다.
'반성 = 내 모자람을 깨닫는 행위 = 깨달음'
깨달음이 '갖춤'에 어떠한 관련이 있을까? 갖춤의 기본 전제가 깨달음일까? 아직 잘은 모르겠다. 아직 생각하는 과정이니 말이다. 반성과 깨달음이 한 배라는 것을 통찰하는 것만으로도, 아직 새롭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계속해서 반성하고, 내 모자람을 깨닫고, 그리고 깨달음으로 향해 가야하는걸까? 아마 그럴 것 같다. 아니, 그렇게 방향을 잡아야 하겠다. 2021년, 나는 뒤늦게 정법과 가까워졌다. 내년에는, 다른 목표를 세우지 않고, '갖춤', '반성' 이 2개의 키워드를 갖고 살아봐야겠다.(목표대로 된 것이 없으니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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