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 듣고 쓰기

정법, 법의 기운, 에너지의 주파수

공부생 2022. 3. 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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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시간 6시 42분, 저녁을 먹었다.

 

 

오늘도 걸으면서 정법을 들었다. '스승님을 믿지 말고, 정법을 믿어라'라는 주제의 법문을 들었다.

 

 

스승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신다. '정법을 공부하는 가족은, 내가 보호합니다. 내가 지켜줍니다' 생각해보면, 조금 의문스럽다. 텔레파시라는게 정말 존재하는걸까? 나나 내 주위에 그런 분이 없어, 자세히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그런 에너지적 소통이란게 의문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참 묘한게 있다. 체력적으로 힘들거나, 정신줄이 놓아졌을 때, 정법을 들으면 금방 돌아온다. 아무리 힘들어도, 정법 3개만 딱 들으면, 눈빛이 돌아오는걸 느낀다. 스승님 목소리에서 그런 기운의 효과가 있는걸까? 아니면, 정법 내용이 그마만큼 대단한 진리여서일까? 한두 번이 아닌, 여러번 그런 경험을 하며 생각이 들었다. '아.. 정법이 나의 정신적 피신처가 되겠구나'

 

 

 

가끔 음악을 들으면, 곧바로 기분이 바뀌는걸 경험하기도 한다. 소음에 너무 시달렸을 때, 힐링 뮤직을 들으면 그래도 살만해진다. 나름 중화가 된다. 그래도 힘들면, 한강에 가서 음악을 듣는다. 그러면 바로 에너지가 안정된다. 어쩌면, 만물은 일정 수준의 주파수를 갖고 있을 수도 있겠다.

 

 

책에서도 주파수나 에너지에 관한 부분을 보기도 했다. '데이비드 호킨스'라는 분의 책을 보면, 감정이 수치로 표현되어있다. 설마 그럴까 생각이 들면서도, 정말 신기하리만큼 맞아 떨어질 때가 있다.

 

 

천장이 꽉 막힌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다닥다닥 밀집되어 있는 쇼핑몰에서

 

더러운 동네의 비좁은 인도 도로에서

 

사람들이 많이 산책하는 인공 호수가에서

 

빌딩이 거의 없는 개발되지 않은 곳에서

 

강이나 바닷가에서

 

산 꼭대기의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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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음악도 제각각 다르다.

 

 

힙합 음악

 

락 음악

 

k-pop 음악

 

발라드 음악

 

패션쇼 음악

 

클래식 음악

 

수도사들의 그레고리안 음악

 

카톨릭 성가

 

스님 염불 소리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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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소에서 + 무엇을 보며 + 어떤 소리를 듣느냐?' 이것만으로도, 인간의 기분은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 화났던 기분이 풀리기도 하고, 안정되었던 기분이 순식간에 긴장 상태로 돌변하기도 한다. 정말, 각각의 주파수가 있는걸까?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어떻게 작용하는걸까?

 

 

그러고 보면,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도 꽤 중요하다. 잘생긴 사람이냐, 목소리가 좋은 사람이냐, 힘이 있는 사람이냐도 꽤나 중요하다. 환경이 천기이고, 음식이 지기라면, 사람은 인기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사람이 안맞는다면, 기분이 좋아질 수 없겠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에너지를 주는 사람인가? 에너지를 떨어뜨리는 사람인가? 사실 이점을 생각해보며 산 적은 없다. 그러나, 분명하다. 하루 중, 미소를 많이 지을수록, 상대방의 에너지를 올려준다는 것은. 거기에 칭찬의 말, 사랑의 말, 감사의 말을 해준다면? 에너지는 더욱 올라갈 것이다. 시너지가 생길 수 있다.

 

 

밝은 색깔 옷. 깔끔한 디자인. 호감을 주는 인상. 겸손된 태도. 칭찬의 언행. 이런 것들을 볼 때, 에너지가 떨어질리는 없다. 옷을 입는 것도 상대를 위해 입는다는 스승님의 말씀이, 참 맥락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단지 나를 뽐내기 위함이 아니라, 상대를 기쁘고 즐겁게 하기 위해서 입는 패션. 그것만큼이나 숭고한 철학이 담긴 패션이 있을까?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이 든다. '그동안은 너무 나 하나만 갖고 살았다. 너무 좁은 틀에 갇혀 살았던 것 같다. 모든 일에, 세상의 입장으로 생각한다면 어떨까? 옷을 입는 것도, 행동을 하는 것도, 직업을 택하는 것도, 세상의 입장에서 이로운 방향으로 선택한다면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그 전에 살았던 방식과는 정말 다를 것 같다.

 

 

이타적이라는게, 맹목적으로 상대를 위한 희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세상의 입장에서, 모두가 이로운 방향. 최선의 방향으로 상생하는 결. 그런 방법을 찾아, 나와 남 모두가 행복하고 싶다. 아니 나와 남이 아닌, 우주 전체가 행복해지는 길을 펼쳐내보고 싶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