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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시간 7시 14분, 샤워를 마쳤다.
5시 40분? 알람을 1시간 넘게 거트리면서 잠을 잤다. 월요일인데도 그렇게 잤다. 그런 면에서 난 참 게으른 것 같다.
정법 3개를 들었다. 오늘 아침 올라온 3개였다. 그 중, '코로나 백신 때문에 고생하는 어머니'였나? 뭐 그런 종류의 제목이었다. 그런데 스승님 법문은 통체적이었다.
'코로나가 왜 왔고, 왜 걸리는가?'
이에 대한 통체적인 원론을 따주시는 느낌이랄까? 내가 그 전에 갖고 있던 가설이, 실제로 확인받은 듯 하다. 사람의 목숨이라는게 참 자유로우면서 그렇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순간, 영원할 것 같지만 얼마나 소중한 순간이던가. 이를 잊어버릴 때, 자연은 조용히 걷어가는 것도 같다. 그래서 더 무섭게 느껴진다.
문선명 헬기사건이라던가. 록펠러 열차사건. 또 여러 기업인이나 리더의 일화를 보면, 정말 기똥차다. 5분, 1분 차이로 생사가 갈렸고, 그들은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또, 차동엽 신부님, 이태석 신부님 등등 엄청난 인재 분들이 빨리 돌아가신걸 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아니, 한 참 일을 해야 하실 분들인데... 왜 돌아가실까.. 생각을 했다.
확실히, 자연의 기준은 다른 것 같다. '사회에 얼마나 영향력을 끼치는가'가 평가 기준인 것 같다. 조용히 착하게 사는 것과, 크게 나쁘게 사는 방법으로 나뉜다면, 자연은 후자를 더 이뻐라 하는 것도 같다. 그런 면에서, 내가 쌓아온 도덕관념은 올바르지 않은 것일까? 이 부분에 대해 좀 혼돈스럽다.
100세 가까이 살고 가신 분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1)은퇴 없이 자기 일을 끝까지 하거나
2)끊임없이 공부를 하여, 후학을 양성하거나
3)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거나
그 외의 이유도 있겠지만, 내가 뽑은건 위다. 사람들에게 무언가 영향을 끼쳐야,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듯 하다. 이는 인간계 뿐 아닌 동물계도 적용되는 공식일까? 참 궁금하다.
스승님 법문에 이런 말씀이 있어 충격이었다.
"백화점, 호텔은 그렇게 많이 드낙거리는데, 왜 코로나 안걸리는데? 왜 골방에서 틀어박혀 기도하는데, 왜 갑자기 걸리는데?"
이 부분에서, 한 편으론 막혔던게 뚫리는 기분이었다. 나 또한 공부를 하고 있기에, 코로나가 그렇게까지 와닿진 않았다. 조심은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그렇게까지 오버해서 나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안했다. 어제 정법에서 '공부하고 갖추고 있는 자는 신이 보살핀다'라는 대목이 있었다. 무언가 모르게, 안도감? 같은게 들기도 했다.
가끔가다 생각이 든다. 내가 헛되이 보낸 이 하루가.. 누군가에겐 얼마나 소중한 내일인지. 그리고, 과거를 돌아봤을 때의 하루가, 지금 입장에서 얼마나 소중한 순간이었는지. 과거 사람들, 내 시간, 기회, 선택안들.. 지금 돌아가면 고치고 싶은 것 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은, 바로 오늘을 제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내일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을 바른 방법으로 잡아가는 것. 이것 밖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런 면에 있어, '과거 이야기'를 일삼는 사람들은, 오늘에 대한 성실하지 못한 태도라고도 보여진다.
바른 방법으로 못산다는게, 얼마나 무서운건지.. 조금씩 와닿는다. 알든 모르든, 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가면 처단 받는다는게 말이다. 무엇보다 더 무서운건, 그걸 알려줘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무지를 깨지 못할 때, 운명은 가차없이 적용된다. 그런 면에 있어, 운명론이라는게 참 없는 것만은 아닌 것도 같다.
인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류를 구제하는 방법일지 모르겠다. 인류대민사업이라는게, 꼭 돈으로만 해결한다는게 아닌 것이라는거.. 조금씩 이해가 간다.
각자 자기자리에서 내 할 일을 해야, 자신과 사회에 시너지가 날 수 있다는 것. 그 일을 하도록 찾아주는 것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 그리고 지도자가 그 행복을 찾아줘야 한다는 점에 있어, 조금 사명감이 느껴진다.
한 편으론, 내 자신이 재주꾼이 될 뻔 했다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내가 방향을 틀었던걸까? 아니면, 원래 운명이 이런 쪽이었던걸까? 필연적인지 자유의지가 적용된거였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인생은 예측불허라지만, 어느 정도 개척해나갈 수 있는 부분은 있는건 분명하다. 의지에 따라 말이다.
오늘 아침은, 조금 숙연하게 시작되는 것 같다. 오늘 하루를 주심에, 좀 더 진지하게 감사하게 된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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