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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시간 6시 5분, 저녁을 먹었다.
오늘도 걸으면서 정법을 10개 넘게 들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부분을 적어보려 한다. 오늘 주제는 '겸손'이다.
1. 스승님은 항상 말씀하신다. "겸손하십시오. 공부는 겸손입니다. 얼마나 상대에게 겸손하느냐가 공부의 척도입니다."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겸손 안해도 되는데, 안하면 얻어 맞게 됩니다."
왜 겸손을 그렇게나 강조하실까? 법문을 듣다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부분이 '겸손'이다. 겸손이란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라 하셨다. 상대를 존중하는 것은, '갑이 을을 존중할 수 있다'고 하셨다. 을이 갑에게 겸손하는게 아니라, 갑이 을에게 겸손한 것이라고 하셨다. 이 부분까지 이해하는데, 꽤 걸렸던 것 같다.
2. 그런데, 겸손이 쉽게 안될 때가 있다. 잘나지도 않았는데, 앞에서 설쳐대는 상대가 보일 때가 그러하다.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보일까? 그래서 다툼이 생겼던걸까? 스승님은 항상 말씀하신다. '상대방이 잘난척 하더라도, 그것을 쓸어마셔야 한다'라고. 그런데 우리에게는 '잘난척해도 되는데, 하면 하는만큼 더 힘들어질 것이다'라고 하신다.
무엇일까? 잘난척하면, 정말 삶이 힘들어질까? 그 인과는 어떻게 될까? 우리 주변에는 잘난척하는 부류들이 너무도 많다. 요즘 같은 자기 PR 시대엔, 잘난척 안하고 가만히 있는게 옳은가 의심도 된다. 어떤 사람들은 뽐내고 나서는 성격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안으로 안으로 수그러드는 경향이 있다. 제각각 잘난척하기 쉬운 근성과, 잘난척을 죽어도 하기 힘든 근성으로 나뉘는 것처럼도 보인다. 나는 스스로를 잘난척 하지 않는 부류로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내가 잘난척을 하면서도, 잘난척을 하지 않는 부류로 생각했던게 아닐까? 잘난척 하는 사람은 힘들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겁이 안날 수가 없다. 내가 잘못하고 있으면서도, 잘했다고 뻑뻑 우겨대는 것만큼 꼴불견은 없다. 혹시 내가 그런 것은 아닐까? 만약 있다면, 언제 그럴까?
3. 노자에도 이런 대목이 있다. '신은 용감한 것을 싫어하여 약한 것에 덜어준다. 왜인지는 모르나, 신의 작용은 그러하다.'(아래 정확한 인용)
'하늘의 도는 활을 당기는 것과 같다'
하늘의 도는 마치 활을 당기는 것과 같다
높이 있는 것은 누르고 아래에 있는 것은 올려주며
여유 있는 것은 덜고 부족한 것은 더해준다.
그러므로 하늘의 도는 여유 있는 것을 덜어서
부족한 것에 더해준다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아서
부족한 것을 덜어서 여유 있는 것을 받든다
누가 여유가 있으면서도
하늘에서 본받음을 취할 것인가
오직 도가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이 때문에 성인은
무엇을 하더라도 그것을 차지하지 않으며
공을 세우더라도 그 공에 머물지 않는다
이처럼 자신의 뛰어남을 보이고자 하지 않는 것이다.
약 7년 전인가? 나는 이 말을 듣고, '대체 뭔소리인가' 했다. 7년 후인 지금, 정법을 듣고 '조금 비슷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즉, '잘난척하는 놈부터 팬다'는 말처럼 들린다. 겸손한 자만이, 하늘의 복을 얻을 수 있다는 말 같이 들린다. 그래서일까? 성공한 사람들이 자꾸만 '초심'을 외쳐대는 이유를 말이다.
재벌이든 스타든, 정치인이든, 과도하게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망해왔던걸 봐왔다. 생각나는 이름도 수 명이다. 오히려, 겸손하고 굽신대는 것처럼 보이는 인사가, 조용히 오래 가는 것 같다. 노자에 나온 그대로다. '공을 세우고도 내 것이라고 하지 않으니, 오래갈 수 있다'라고 한 대목이 그러하다. 정말 정법은 노자와 같은 맥락인걸까?
4. 나는 아직 사회 경험이 많이는 없다. 인문학과 정법을 일찍 접했을 뿐이다. 그 이론을 토대로 세상을 봤을 때, 뭔가 공통되는 귀결이 있다. 그것을 '법'이라고 명명한다. 여기에서의 법은 '자연의 법칙'이다. 자연의 법칙은 속일 수도, 용서를 빌 수도 없다. 뿌린대로 거두는 인과법이다. 인과의 법칙을 인정한다면, '나는 겸손하지 못해서 힘들게 사는 것일 수 있다.'는 가설이 나온다. 인과의 법칙이 '자연법'이 맞다면, 나는 분명 겸손에서 어떤 배울 점이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 나 스스로가 생각하는 겸손과는 별개로, 뭔가 내가 모르는 겸손의 공부가 남아있는 것 같다. 무엇일까?
요즘 들어 정법이 무섭게 들린다. 시간이 지날 때마다, 뉴스를 볼 때마다, 정법 그대로 운용됨이 보여진다. 내가 정법을 놨다가 다시 찾은 이유 또한 '공포심' 때문이다. 칼 같이 적용되는 스승님의 말씀에, 정신을 차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엔 쉽게 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깊이가 장난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정법은 정말 가볍게 볼게 아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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