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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시간 3시. 눈 오는 날이다.
밖을 걸으며 정법을 들었다. 듣다 보면, 몸이 아픈 분들의 질문이 많다. 그럴 때마다 스승님은 '몸 나으려고 하지 마라'고 하신다. 또 형편이 어려운 분들의 질문엔 '돈을 벌려고 하면 절대 돈이 안벌린다'라고 하신다.
1. 왜 경제가 어려워질까?-
왜 어떤 사람들은 경제가 힘들고, 어떤 사람은 건강이 힘든걸까? 또 경제와 건강 모두 안좋은 경우는, 어떤 경우의 공부일까? 인과가 무엇일까? 우리 인간의 잣대로 봤을 때, 이들은 가련하기 짝이 없다. 경제적 약자, 노약자, 수급자 등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왜 이들을 '공부해야 할 부류'로 잡으신걸까?
옛날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저는 40살까지 1000만원을 손에 쥐어본 적 없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았고, 너무 힘듭니다. 고용주들에게 맞기까지 합니다. 저는 왜 이런 삶을 사는 것입니까?"
스승님께서 답하셨다. "잘난 척을 그만하세요"
나는 좀 충격이었다. 경제가 힘들어서 온 사람에게 잘난 척을 그만하라니.. 대체 무슨 원리일까? 정말 경제와 '겸손'이 관련이 있는걸까? 가끔 부자들 중, 엄청나게 겸손한 분들을 보곤 한다. 잘사는데도 불구하고, 상대 앞에 겸손한 분들이 있다. 반면, 잘산답시고 낮은 계층들을 무시하고 안만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부자의 부류도 각기의 모양인 것처럼 느껴졌다.
옛날에 영웅시대라는 사극에서 이병철 역이 이렇게 말했다. '하심 밖에 없다. 하심해라..'
이병철 하면 한국 1위 부자다. 그런데 그가 '하심'을 논했다. 대체 무엇일까? 하심과 경제의 정도가 정말 관련이 있는걸까? 하심과 겸손의 차이는 무엇일까? 정법에서는 '겸손 = 상대를 존중'이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하심은 뭘까? 하심을 하면 경제가 오는걸까? 돈에 대한 관심과 나의 마음 속 욕심이, 실마리를 찾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올바른 답을 얻어, 잘 살아보고 싶은 솔직한 욕구 때문이다.
2. 왜 건강이 안좋아질까?-
또 주위를 보다 보면, '병원 단골'들이 있다. 이들은 3년 이상씩 병원에 출퇴근을 해왔던 사람들이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경우가 많다. 이들은 현대의학을 매우 신뢰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루 수 알의 병원 약을 먹는다. 그러는데도 불구하고, 건강은 갈수록 나빠진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건강에 신경 안쓰고 막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건강하다. 병원 검사를 받아도 크게 문제될게 없다. 그런데 계속해서 병원 내원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건강이 안좋아진다. 약을 먹든 안먹든 말이다. 대체 왜 그럴까?
정법 스승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적 있다. '영혼의 질량을 키워라. 영혼이 골다공증인데 몸이 건강하다? 영이 본이다. 본부터 해결해라'(정확한 단어는 기억안나지만, 맥락은 이렇게 이해했다)
시간이 지나고, 정법 건강 질문자들의 공통점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건강 안좋은 사람의 공통점
a.돈이 많아 병원 자주 간다
b.좋은 집, 좋은 음식, 상류 라이프스타일을 누린다
c.시간이 지나 면역력이 약해져 아파온다
'그만큼 좋은 음식을 먹어놓고, 사회에 한 일이 없이 놀아? 저 백성들은 힘들게 일하는데? 너는 벌 받아야 마땅하지!'라 일갈하신 스승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내 주위에도 이런 분들이 몇 있다. 병원 다니시는 분들이고, 집 평수도 넓은걸로 안다. 그런데, 몸이 아프신 경우가 많다. 이 분들 아픔 패턴이 이렇게도 똑같을까?
가설이 정설로 증명이 되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겁이 나기 시작했다. 욕심을 부릴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누릴 것을 부러워하고, 설령 누리게 되었다 한들, 나도 저 병자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누리고 싶은' 욕심이 들지 않기 시작했다. 단지, 내가 '누리고 있는 것 이상으로 값을 못해낼까봐' 질량의 값을 못해내는게 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누린다는 것은, 공짜가 없는 것 같다. 내가 그동안 돈 욕심을 낸 것은, 돈 자체가 아니었던 것 같다. '남 보다 우월하다는 증명'이나 '사회적 인정'이었던 것 같다. 아직도 이런 욕구가 있다는 점 인정한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봤을 때, 사회적 인정을 받기보다 주는 사람이 홍익인간에 더 부합한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사회적 인정을 줄 것인가? 받을 것인가?를 선택하라고 했을 때, 가볍게 택할 수 없는건 사실이다.
3. 홍익인간 정체성 가설-
홍익인간이라는 정체성을 가졌을 때, 돕는게 돕는게 아니라 의무가 되는게 아닐까? 단순히봉사활동을 가서 '나 이렇게 훌륭한 일을 했어' 따위의 뿌듯함을 느끼는 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말이다. 나 또한 정법을 이해하는 수준이 낮다는걸 안다. 이렇게 낮은 수준에서라도, 나름 이렇게 정리를 해보고 싶다.
'홍익인간의 정체성 => 돕는 사람이 아니라, 의무를 다한 사람'
(*필자의 정리입니다. 가설로만 여기시기 바랍니다)
다시 경제와 건강으로 돌아와보자. 나는 이런 가설을 가져본다.
'경제가 힘든 이유 : 겸손하지 못해서'
'건강이 힘든 이유 : 누리는 것의 질량값을 못해서'
표면적으로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예외사항을 따지다 보면, 끝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궁금한 것은 '본질적 이유'다. 뭔가 단순한 법칙이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고, 정법을 듣다가 나름의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진리란 본래 단순한게 아닐까?'
4. 필자의 반성-
나 또한, 이 말을 쓰면서 반성이 된다. 잘난 것도 없으면서 겸손하지 못했다. 무시를 너무 당하고 살았다는 열등감 때문인 것 같다. 내 질량을 높일 생각은 안한채, 상대들을 탓하고 살아온 이력이 깊다. 인정한다. 이 부분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들기 시작했다.
건강이 힘든 것은, 아직 그렇지 않음에 감사하다. 만약 우리 집이 넓거나, 사치 따위를 하고 살았다면? 나는 가장 큰 자산인 건강을 잃었을 확률이 있다고 생각한다. 돈을 벌었다 한들, 이런 이치를 모른다면 인생이 통채로 망가질 것이다. 이유도 모른채, 돈은 돈대로 낭비하고, 건강은 계속 안좋아질 것이다. 그렇지 않음에 감사할 뿐이다.
5. 공부의 목적-
인생이란, 참 잔인한 것 같다. '순환의 바퀴'는 계속 굴러간다. 시간에는 '가속력'이 법칙처럼 적용되어, 지수 함수 그래프를 만든다. 알면 선순환이요, 모르면 악순환이 지속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크게 적용된다. 본인이 악순환의 선로에 서있으면서도, 모르면 계속 안좋아질 수 밖에 없다. 이유도 모른 채 계속 안좋아지기만 하니... 입에서 "억울하다" 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이들의 말도 이해가 된다.
법을 안다는 것. 진리를 공부한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불교에선 '재(재물)보시'보다 '법보시
'를 우수하게 친다고 한다. 악순환의 선로에서 구해주는 것. 인생을 구해주는게, 정말 중생을 구하고 홍익행을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단순히 거래성이나 선심성이 아니라 말이다.
내가 진리를 공부하는 것도, 이 분들을 악순환에서 빼내주기 위해서라고 방향성을 잡아야겠다. 그렇지 않다면, 내 과거 업식 상 '내가 너보다 알아. 잘났어!' 휴리스틱에 빠질 확률이 있기 때문이다. 이게 내 수행인가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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