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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도서관에 갔다. <플라톤의 인생수업> 이 책이 손에 집혔다. 철학은 원래 잼병이지만, 그래도 뭔가 끌렸다. 플라톤이 누군지도 모르고, 그냥 집어 들었다
오늘도 역시, 인상깊었던 문장을 적어왔다. 다 기억은 못하지만, 적어온 문장을 쓰며 한 번 리마인드해보겠다.
1. 타인의 생각은 어떤지 상관 안하고, 내 절대적 기준만 내세우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도덕적 영역에서의 옳고 그름 기준은 절대적으로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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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게 뭔소린지는 모르겠다. 내 절대적 기준을 내세우지 않는데, 도덕적 영역에서의 옳고 그름을 지키라? 만약, 타인이 도덕적 영역에서 그른 행동을 했다고 치자. 타인이 "이건 저의 개성인데요?! 무슨 상관이시죠!?"라고 응수한다고 치자.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저는 도덕적 영역에서의 옳고 그름을 지킨겁니다!" vs "제 생각은 왜 안해주시고, 당신의 기준만을 강요하시는거죠?"
약간 이런 충돌이 날 수도 있을 것 같다. 플라톤은 여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바가 있을까? 사실 그렇다. '도덕적 영역에서의 옳고 그름'이라는게, 사람마다 문화마다 차이가 있다. 예컨데, 파키스탄에서는 여성이 밖을 돌아다니는게 도덕적으로 나쁜 행위로 간주된다. 남자와 손만 잡아도, 무슬림 문화권에서는 도덕적으로 그른게 되어버린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어가면서, 이런 관습적인 요소들도 점차 바뀌어가고 있다. 도덕적 옳고 그름의 기준이라는게,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바뀔 수가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1부 1처제가 도덕적이다. 첩을 둔다는 자체가 굉장히 나쁜 행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후처를 두는 행위가 '도덕적으로 그른 행위'이다. 그런데 50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유명 정치인, 기업인들의 가정사를 보자. 전부 후처 소생들이 많다. 배다른 형제들이 많다. 후처들을 두고 살았다. 대다수가 후처라는 개념이 있었다. 조선시대 때는 '몸종' '기생'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도덕적으로 그렇게 옳고 그름을 따졌던 조선시대의 절대적 기준이, 2024년의 눈으로 보면 절대적 패악에 속한다.
플라톤에게 물어보고 싶다. '플라톤씨.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2. 모호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차라리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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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말에 나는 동의한다. 내 스타일이 딱 그렇다. 뭐가 뭔지 상황판단이 안되면,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나의 위와 같은 성향 때문에, 아무 성과도 못내고 정체되있다. 모호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아무 생각도 행동도 하지 말라? 이게 옳은 방식일까? 사실 잘 모르겠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확실한 상황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미래는 불확실의 영역이다. 그 무엇도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용기를 갖고 도전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실패하더라도, 배울 수 있는 경험은 남기지 않을까?
누가 그랬던 것 같다. '정말 큰 위기는, 아무런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 태도'라고. 플라톤에게 또 물어보고 싶다. "플라톤씨. 세상 모든게 불확실한데, 평생 아무런 행동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을까요?"
3.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지혜를 사랑하는 자는, 즐거운 경험이 가장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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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이 생각났다. 신이 솔로몬에게 '무엇을 줄까?'라고 물으니, 솔로몬은 '지혜를 주십시오!'라고 한다. 그리고 솔로몬은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지게 된다. 돈도, 명예도, 권력도 다 가지게 된다. 지혜를 갖게 되니, 다 갖게 되었다.
사실 나는 지혜를 갖고 싶다 생각해본 적은 없다. 돈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했다. 명예? 잘 모르겠다. 권력은 한 번 가져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뭔진 모르지만, 가지면 기분이 좋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있지 않은가(물론 책임같은 것은 생각 안해봤을 때 이야기). 나는 한 번도, 지혜를 가졌을 때, 모든걸 다 갖게 될거라는 생각은 안해봤다.
그런데 여러 책을 보고, 진정 승자는 '지혜'를 가진 자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삼국지의 조조도, 제갈량도,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그리고 많은 성공한 기업인들도, 정주영도, 로스차일드도, 록펠러도, 전부 지혜가 있었다. '꾀'라는게 있었다. 꾀와 인내와 인복과 뭐 다른 요소들도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꾀'라는게 결국 모든 상황에서 문제해결의 핵심 키가 되어준다.
지혜를 내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지혜를 내면, 인간관계를 해결할 수 있다. 지혜를 내면, 남 밑에서 일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지혜를 내면,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다. 지혜를 내면, 상대방을 설득하여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혜라는게 진정 중요한 '능력'이 아닌가 싶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 철학 책을 읽는다? 사색을 한다? 다른 사람들의 많은 책, 유튜브를 본다? 아니면 솔로몬처럼 기도를 한다? 아니면 타고난다?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러나, 책과 글쓰기, 그리고 사색을 하면서 지혜를 늘려가는 시도는 계속 해야겠다. 그 이상의 지혜로워지는 방법을, 한 번 검색해서 찾아봐야겠다.
4. 인간이 소유한 자산 중, 직접 행복하게 하는건 뭘까? 쇼펜하우어는 '명랑한 마음'을 꼽았다. 당신은 하루를 명랑한 마음으로 보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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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마음이라는게 뭘까? 유머러스함? 좋은 생각을 하는 것? 미소를 많이 짓는 것? 이런 것들이 떠오른다.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냥 '밝게 살라는건가?' 싶다.
명랑한 마음을 가지면, 인생 전체가 행복해질까? 밝게 살면 행복해질까? 쇼펜하우어는 불행하지 않는게 행복이라고 했다. 고독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솔직히 쇼펜하우어가 명랑한 사람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동시대를 살진 않았지만, 그의 말이나 기록을 보면 '염세주의자 아닌가?'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 사람이 '명랑한 마음'을 행복 요소로 꼽는게 조금 이상하다. 아니면, 내가 쇼펜하우어의 말을 잘못 해석했을 수도 있다. 별로 쇼펜하우어를 좋아하지 않지만, '명랑한 마음'이라는걸 갖고 생활하면 행복하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명랑함, 행복감을 잃어가는 요즘, 한 번 명랑해져보고 싶다. 밝아져보고 싶다. 한 번 그렇게 마음을 가져보고, 밝은 사람을 따라 살아보려고 한다. 행복하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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