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내 자아는 무엇일까? <고통 말고 보통>을 읽고

공부생 2024. 7. 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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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행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즐거워하는 것을 버리고, 주위의 평판이나 경제적 이득 때문에 노동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스스로 비범해질 수 있는 길을 버리고, 평범한 길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빡빡한 생활 때문에, 여러가지 현실적 문제들로 인해 '진지한 취미'를 시작하는게 결코 쉽지는 않다는걸 알고 있다. 그렇지만, 즐거움이 갖고 있는 '힘'을 믿어보자. 분명, 전보다 훨씬 행복한 오늘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지금 당장 내가 무엇에 즐거움을 느끼는지 몰라도 좋다. 지금부터 찾아봐도 결코 늦지 않으니까. 내가 즐거워하는 일을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일단 놀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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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으면서, 가수 '장기하'가 생각났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일, 하고 싶은 음악 방향으로 '자아실현'한 케이스다. 장기하 또한 위와 같은 말을 한다. '하고 싶은대로 해'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뭘 자꾸 그렇게 하려고 해' 등 그냥 본인 스스로가 되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회에 나와보면 그렇게 녹록치가 않다. 개인의 개성은 무시당하기 일쑤고, '사회화'라는 작업을 통해 몰개성화를 거친다. 물론 어떤 사람은 이게 잘 맞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취미나 즐거움은, 그냥 잃어버리게 된다. 

 

사실 내 이야기인 것 같다. 내가 직장생활을 열심히 한건 아니다. 그러나, 내가 가졌던 취미? 같은게 필요악으로 생각하고 다 버렸던 것 같다. 술마시는 것도 취미가 될 수 있고, 영화보는 것도 취미가 될 수 있다. 게임은 원래 안했다. 그런 것들을 싹 다 버리면서, '저런걸 하는건 필요악'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장기하가 노래를 안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처럼, 노래는 필요악이라고 생각하면서 공부만 정답이라고 생각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2. 노동은 수단과 목적이 분리된 행동이고, 놀이는 수단과 목적이 일치되는 행동이다. 삶에서 놀이가 차지하는 영역만큼이, 바로 행복이다. 만약 당신이 지금 불행하다면, 아마도 삶에서 놀이의 영역은 거의 없고, 노동의 영역만 가득 차있는 상태일 것이다. 쉽게 말해, 목적과 수단이 일치된 행동을 얼마나 많이 하고 사느냐가, 곧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사느냐'의 척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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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정말 맞는 말이다. 통상 평일에 노예의 생활을 하고, 주말에 주인의 생활을 하려 한다. 평일에는 돈을 버는 시간이고, 주말에는 돈을 쓰는 시간으로 생각한다. 난 평소에 이런 삶에 의문을 품었었고, 애초에 그런 삶을 살길 포기했다. 

 

사이토히토리가 그랬나? '상인은 24시간 상인이어야 한다네. 가게에 있을 때만 친절하고, 가게 밖에서 달라진다면 그것은 진정 상인이 아닌게야' 쉽게 말해, 1가지 자아로 살라는 뜻이다. 

 

나도 1가지 자아로 살고 싶다. N잡러고 뭐고, 나라는 사람은 한사람이다. 그냥 내가 되고 싶다. 나로 살고 싶다. 놀이를 하면서 돈까지 벌린다면, 참 행복한 삶이 될 것 같다.  

 

 

 

 

 

 

 

3. 삶 속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놀이의 영역을 확장해나가야 한다. 물론, 그 확장의 범위와 속도는 개인의 사정과 환경에 맞게 조절해야겠지만 말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이 절박한 사람이라면,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놀이의 영역을 조금 더 확장하면 될 것이다. 행복에 대한 절박감이 덜한 사람이라면, 놀이의 영역을 조금 덜 확장하면 된다. 그것은 개인이 처한 환경 그리고 결단의 문제이니, 누가 무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선택한 삶에 대해서,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다. 잃어버린 놀이를 찾아보자. 행복은 분명 있다. 놀이 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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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놀이. 과연 무엇일까?

 

 

물놀이가 생각난다. 나에게는 사우나가 하나의 놀이이긴 하다. 사우나에서 가만히 있다 보면, 저절로 힐링이 된다. 또, 술먹는 것도 놀이다. 좋은 자연환경을 보며, 술을 먹는 것. 혼술이든 좋은 사람이든, 그냥 술 한 잔 하는 것. 그것도 하나의 놀이다. 그 외에 어떤 놀이가 있나? 

 

 

사실 놀이를 하는 것도, 제한이 있다. 일반인 가정에서 골프를 해볼 수 있겠는가? 평범한 가정에서 뮤지컬을 보러 다닐 수 있겠는가? 맛집 다니는 것도, 놀이가 될 수 있을까? 그것도 다 해본 사람의 말이다. 해보고, 먹어보고, 누려본 사람이 그 놀이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면에서, 참 기회라는 것도 불공평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4. 놀이의 핵심적 두가지 속성은 ㄱ즐거움 ㄴ자발성 이다. 즐거움과 자발성, 이 2가지 속성에 주목하면서, 여러 경험을 쌓다보면 곧 놀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놀이를 놓지 않고 산다면, 언젠가 그 놀이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바로 그런 일, 놀이로 생계를 유지하는 일에 '행복한 밥벌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그래, 맞다. 왜 밥벌이는 놀이처럼 행복하면 안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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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돈은 몽당 써라>의 호리에몬이 생각난다. 그 사람도 같은 말을 했다. 가진 돈을 몽땅 쓰면서, 행복을 뒤로 미루지 말라고. 본인이 행복한 일을 하라고. 본인도 컴퓨터 바탕화면에 뭔가를 만드는게 좋아서, 그냥 만들다보니까 프로그래머가 되었다고. 그렇게 큰 돈을 벌게 되었다고. 

 

사우나를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혼술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자연환경을 보면서 돈을 벌 수 있을까? 내 취미를 뽑아보면, 위의 정도가 있다. 작가가 내 눈 앞에 있다면, 당장 위 질문을 해보고 싶다.

 

 

 

 

 

 

 

5. 인간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지 않고서는, 행복할 수 없는 존재다. 동시에 인간은, 타인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도 없는 존재다. 쉽게 사랑받기 위해 돈, 명예, 권력을 좇지만, 그 끝에는 결국 자신을 잃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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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나로써 인정받고, 긍정하고 싶다.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그러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우리가 힘들 때, 자연을 찾는 이유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 언제든 바람을 내어주고 언제든 그늘을 내어주기 때문 아닐까? 내가 힘들든 안힘들든, 파도는 언제나 치고 있다. 그런 점이 좋은게 아닐까?

 

 

 

 

 

 

 

 

6. 우리가 행복한 밥벌이를 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자아실현의 욕망'을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순수한 욕망을 긍정하지 못한채, 세상 사람에게 사랑받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밥벌이는 늘 고되고 치사스러운, 그래서 가능하면 하고 싶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돌아보면 참 서글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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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아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