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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서 정법을 들었다. 이런 대목이 들렸다. "하느님이 다 용서해도, 잘난 척한 것은 용서를 안합니다. 잘난 척 한 대가는 반드시 치뤄야 합니다. 잘난 척 해도 되는데, 한만큼 값을 해야 합니다."
"처음에는 일정시간을 두고 봅니다. 잘난 척한 만큼, 값을 못하면 반드시 대가를 걷어갑니다. 사람이 있다고 잘난 척한 자는, 사람을 걷어갈 것입니다. 외모로 잘난 척한 자는, 외모를 걷을 일이 생깁니다. 왜냐? 잘난 척한 것은, 상대를 못난 사람을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을 듣고, 좀 충격이 왔다. '아.. 잘난 척이라는게, 생각 이상으로 무서운 것이구나..' 바로, 나의 과거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어려운 것도, 혹시 잘난 척하는 습관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반추하게 된다.
나는 그간 거지근성으로 살아왔던 것 같다. 돈이 없으면서, 돈이 있는 척을 하는 것을 잘했다. 흔히, '비언어'라고 하는 부분을 왜곡하고 포장하는 것을 잘했다. 마케팅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어쩌면,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서글서글한 외모가 한 몫을 한 것 같다.
그렇게 살다보니, 칭찬 받을 일이 많았다. 누구나, 어린 나이에 칭찬 받을 일은 잦다. 그런데도, 나는 그 칭찬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감사합니다"하고 그냥 대충 말아버렸다. 상대의 칭찬에, 더 세련되게 상대를 기분 좋게할 수 있는 화술은 몰랐던 것이다. 아니, 화술보다도 상대를 소중히 하는 생각이 모자랐다. 전체적으로 생각이 좀 모자랐다.
지금은 칭찬 한마디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상대의 말 한마디가, 기운을 살리고 죽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그래서, 내 입에서 나가는 말 한마디를 조심한다.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산다. 그것이 상대에게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두려운게 크다. '내가 얼마나 잘못했으면, 이토록 어렵게 살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남탓을 중지하고 생각해보니, 결국 내 잘못이라는 것 밖에는 결론 내릴 수 없었다. 인정하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좋아지려면 어쩔 수 없기에 일단 받아들였다. 아직, 잘은 모르겠다.
근데, 오늘 갑자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나 잘난 척 많이하고 살았나?' 잘난 척의 종류는 무엇인가? ㄱ잘생긴 척(예쁜) ㄴ부유한 척 ㄷ똑똑한 척 ㄹ깔끔한 척 ㅁ강한 척 ㅂ배운 척 등등이 있겠다. 생각해보면, 다 해본 것 같다. 누구한테 잘난 척을 따로 배운건 아니다. 그런데, 어떤 상황이 되면, 본능적으로 잘난 척을 시전하게 되는 것 같다.
핑계는 각설하고, 그럼 왜 잘난 척을 하는가? 내부적인 요인을 따져보자. ㄱ스스로 열등감이 들어서 ㄴ사회생활을 못배워서 ㄷ인정욕구가 오랫동안 충족되지 못해서 ㄹ자아관이 확고하지 못해서 ㅁ자존감이 낮아서 등일 것 같다. 그 중에, ㄱ와 ㄴ이 가장 큰 것 같다.(전부 필자 이야기)
잘생기지 않았는데, 잘생긴 척을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칭찬을 받고 싶어서,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고 싶어서, 여성의 인기를 얻고 싶어서. 주로 여성과 관련되었을 때, 잘난 척을 했던 것 같다. 그럼 여성은? 잘생긴 척 하는 남자를 좋아할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너무도 답이 자명해서, 스스로가 바보같이 느껴진다.
단순히 역지사지 해보면 답이 나올 것을, 왜 그동안 무지에 빠져 살았던걸까? 아마도, 이를 깨우칠 계기가 안되었던 것 같다. 생활이 어려워지고 나니, 진심으로 반성이 된다. 내 앞니가 깨진 것도, 어쩌면 잘생긴 척을 너무 하고 돌아다녀서일 수 있겠다. 지금 생각이 처음 든다.
내 휴대폰 액정이 깨친 채로 돌아다닌 것도, 잘사는 척을 너무 하고 돌아다녀서일 수 있다. 나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을 수 있는 부분이다. 또, 책도 마찬가지다. 지하철에서 책 읽는 나의 모습을 보고, 상대에 따라서 스스로를 '무식한 사람'으로 생각이 들 수도 있는 노릇이겠다. 내가 책이 없고, 상대가 책을 보고 있으면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듯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상대에 맞게 나를 고쳐야 할까? 그 상대라는 것이, 불특정 다수일 때는 어떻게 할까? 나는 현재 생각이 변했다. 상대를 진심으로 존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박힌 상태다. 그런 마음을 갖고 행동을 했을 때, 오류가 없게끔 하고 싶다. 상대가 받아들일 때, 오해가 없게끔 정답을 찾고 싶다. 대중을 상대로 할 때, 과연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 전에, 한 번 미래를 반추해보게 된다. 내가 과연, 지금의 깨달음이 없이 부유해졌다면 어땠을까? 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하는 동네에 입성을 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못사는 동네를 계속해서 무시하진 않았을까? 사람들을 혐오하고 기피했지, 존중하고 이득을 주는 일은 없었지 않았을까? 만약 그랬더라면, 신의 입장에서 나의 모습이 가당한 모습이었겠는가?
똑똑하고, 잘생기고, 노력 많이한 것과는 별개로, 잘난 척이라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같다.세상에 노력 많이 한 사람은 많다. 그렇지만, 그 노력을 상대에게 강요할 때, 무너지는 자수성가형 기업인들도 많다. 선생님들도 가끔 그런 '독설형' 선생님들이 있다. 내가 만약 누군가보다 월등해졌을 때, 이런 오류를 저지르지 않게끔 새겨야겠다.
결론 - 잘난 척의 대가는 정말 무서운 것 같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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