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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 영혼의 질량과 삶과의 상관관계

공부생 2022. 3. 17.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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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시간 5시 31분

 

 

삼양라면을 끓여 먹었다. 먹으면서 '오은영의 금쪽상담소'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연예인들이 심리상담하는 프로그램 같았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한 연예인들. 그들에게도 아픔들이 있었다. 가족이라던지, 질병이라던지, 주로 그런 것들이다. 경제적으로 힘든 연예인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매우 잦은 빈도로 연예인들이 질병에 빠지는 것이 있으니.. 바로 '공황장애'다. 혹은 '공황발작'으로도 나타나기도 한다.

 

 

과거 스승님께서 말씀하신 적 있다. "질병이 오는 것은, 내 영혼의 질량이 모자라서이기 때문입니다. 빨리 질량을 채워서, 아픔이 오던 것을 멈춰야 합니다" 연예인들이 고통 받는 질병은 공황발작, 그리고 가족이다.

 

 

참 묘하게도, 직업군의 부류마다 접하게 되는 사고 또는 질병이 정해져있다. 만약, 보험사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이를 빅데이터로 통계내볼 수 있는 문제다. 예컨데, 기업인의 경우, 본인 또는 가족의 희귀병이 주되다. 그래서 항상, 주치의에게 의존하게 된다. 드라마를 봐도 그렇고, 실제로 그런 기업들이 많다. 외부로 알려진 것 외에, 실제로 비율을 뽑아보고 싶다.

 

 

또, 정신과 의사들이 항상 자살을 한다. 검사들이 감빵에 들어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평소 정의를 울부짖는 정치인들은, 항상 변절을 한다. 이번 대선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참 묘하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공부가 덜 돼서? 영혼의 질량이 낮아서? 수준이 낮아서? 스승님께서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신다. "40세 전까지는 너는 항상 공부에요. 너의 환경에서 배우고 쓸어마셔야지.. 그것을 가르치려 하고, 잘난 줄 알고, 그러다 큰일나요"

 

 

연예인들은 40세 넘어서 힘들어질 확률이 높은 직업군일까? 그렇다면, 40세 기점으로 더 뜨는 연예인은 무엇일까? 그들은 어떤 점에서 갖추었으며, 어떤 점에서 못갖춘 것일까? 40세 이후에 나락으로 가는 연예인들은, 잘난 척을 많이 하고 산 대가일까? 한 번 통계를 내보고 싶다.

 

 

어찌되었든, 요즘 세상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우와.. 50살이 넘었는데.. 배울게 없어보인다.' 이건 내 오만일까? 혹자가 말했다. '현자는 모든 사람에게 배울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그래서, 항상 장점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습관도 있다. 그렇지만, 50살 넘었는데 '자기 감정' '자기 생각'에만 골몰해있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배우고 싶지 않다. 아니, 반면교사가 되는 것 같다.

 

 

나이가 50이 넘었는데 존경이 절로 되는 분들이 있다. ㄱ후덕하며 ㄴ넓은 아량을 갖고 ㄷ삿된 주장하지 않으며 ㄹ망령된 행동하지 않고 ㅁ고요하고 ㅂ겸손할 줄 안다. 반면, 존경이 안되는 분들의 특징은, 위와 정반대라고 볼 수 있다. ㄱ덕이 없으며 ㄴ속 좁고 ㄷ검증되지 않은 주장하기 바쁘며 ㄹ경박하게 행동하고 ㅁ시끄러우며 ㅂ오만하다. 그리고, 남 탓 아니면 세상 탓을 하며 비판적이다.

 

 

놀랍게도 위와 같은 분들은, 외모에서 즉시 판별 가능하다.

 

 

전자 - 눈이 역반달형임

 

후자 - 미간에 세로 주름이 깊이 파임

 

 

첫인상이라는게 꼭 오해만 있는건 아닌 것 같다. 70%는 첫인상을 보고 판단을 한다는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첫인상은 다 틀린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인상 때문에 불이익을 받은 사람일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보자. 사람의 '오행'과 사람의 '질량'이 상관관계가 있을까? 어떻게 있을까? 스승님께서는 "네가 무슨 생각했는지, 용안에 다 드러나요. 어제 바람핀 것까지 써져 있어요"라고 말씀하신다.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모든걸 알 수 있다면, 느낌이 어떨까?

 

 

사실, 안그래도 사람들을 관찰 중이었다. 옷 색깔의 청탁, 안색 빛의 명암, 눈 초점의 뚜렷함의 정도, 헤어스타일의 단정함과 지저분함, 걸음걸이의 차분함과 경박함. 주로, 이런 주안점으로 사람들을 관찰했다. 물론, 장소나 분위기 같은 '외부요인'도 고려해서 말이다.

 

 

눈 초점이 뚜렷한 사람과 뚜렷하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 전자보다는 후자가, 영혼의 질량이 떨어질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질량을 파악했을 때, 실수가 없을 것인가? 사실, 이렇게까지 사고하지 않아도, 우리는 무의식이 직감적으로 판단해버린다. '아 저사람 뭔가 엣지없어!' 하며, 가까이하고 싶지 않아한다. 노숙자를 봤을 때, 본능적으로 가까이 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반면, 결혼 전 남녀가, 이성을 선택할 때 어떨까? 항상, 주의를 기울이며 촉각을 세운다. 대다수는 말이다. 뇌는 지각에 이렇게 명령한다. '빨리 번식 상대를 찾아! 내가 초점을 줄테니, 빨리 잘 분별해봐!'라고 말이다. 미혼 여성의 경우, '잘난 남자'를 고르는게 중요하다. 미혼 남성의 경우, '단기적으로 관계 맺을 여자'가 중요하다. 이성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의 본능은 항상 그렇게 작동해왔다.

 

 

그 본능이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만약 본능을 거스르고, 이성의 판단을 존중했을 때 어떨까? 장기적으로 더 행복할까? 뭐 그럴 수 있다. 잘은 모르지만, 본능대로 충실했을 때보단 생각하고 행동하는게 더 나았던 적이 많았으니. 감정이나 본능에 충실하라고 하는 사람들은, 통상 카사노바였다. 카사노바를 존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혼의 질량이 차있다면, 누구에게나 끌릴 것인가? 본능이 알아차릴 수 있는 부분인가? 본능은 생존과 번식에 모든 초점을 맞춘다. 과연, 영혼의 질량이라는 부분은, 생각하지 않고도 본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부분인가?

 

 

글을 쓰다 보니, 주제에 너무 벗어난 것 같다. 갑자기 현자타임이 왔다. 셀프 물음표 살인마가 된 것 같다. 더는 안될 것 같다. 이 쯤에서 마무리해야겠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