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 듣고 쓰기
정법, 상대를 위할 때 지혜가 나온다? 7522강
공부생
2021. 12. 12. 17:27
728x90
현재시간 저녁 5시. 배가 엄청 부르다.
햄버거를 사왔다. 2개를 혼자 다 먹었다. 한 개를 먹었는데, 양이 안차 한 개를 더 먹었다. 그랬더니 배가 엄청 부르다. 그래도 먹고 싶은걸 먹었으니, 감사한 마음이다.
가면서 오면서, 정법을 들었다. 가는 시간 20~30분이니, 총 1시간 동안 정법을 들었겠다. 걸으면서 정법을 들은 것은 또 처음이다. 집에서 누워서 듣는 것만큼은, 집중이 되진 않는 것 같다. 아무래도 사람들도 마주치고 하니 그런 것 같다.
걸으면서 들은 것은 '지혜가 나오는 원리'에 관한 내용이었다. 정법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지혜는 누구나 나오게 되어있는거라고. 지혜는 상대를 위할 때, 저절로 나오게 된다고 하셨다. 당신들도 누구나 다 쓸 수 있는 것이라고 하셨다. 스승님 또한 그 원리 속에 있다고 하셨다.
나는 여기에 매우 공감이 간다.
방금 유튜브 영상 한개를 봤다. 댓글에 "와,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하셨어요?"가 대부분이다. 내가 봐도 굉장한 지혜이다. 모두를 위해, 윈윈하는 시스템에 관한 내용이었다. 상대방도 영원히 이득이 되고, 잠재적 상대 또한 이득이 되는 모델이었다. 그런 모델을 공공에 공개하는 행위 자체가, 내게는 굉장한 아량으로 보여졌다.
'상대를 위할 때, 지혜를 쓸 수 있다' 말과 너무도 맞아 떨어짐을 느꼈다. 상대에게 이득을 줄 생각을 할 때, 가진 것 이상의 발상이 떠오르는 것이다. 어찌보면, 과거 문선명 총재 책에 써있던 내용과도 상통할 수 있겠다. '우주 법칙에는 입력과 출력이 있다. 입력이 있어야 출력이 있다. 그러나, 사랑할 때, 입력보다 출력이 더 클 수 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상대를 위함'이 사랑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진정 상대를 위함이란 무엇일까? 상대에게 이득을 주는 것일까? 그 이득이라는 것은, 내 기준에서의 이득일까? 아니면, 상대 안에 들어가서, 상대 입장에서의 이득일까? 물론 후자이겠다.
과거 봉사활동을 다녔던 때가 떠오른다. 그냥 봉사활동하는 자체가 나의 자존감을 고양시켜줘서, 꽤나 중독적으로 했었다. 그러나, 정법을 듣고는 내 봉사활동이 위험한 것임을 깨달았다. 상대를 위함보다는, 내 자신의 기분 고양이 더 우선이었던 것이다. 이런 정신머리로는, 봉사를 하든 기부를 하든 위험할 수 밖에 없다. 나는 그것을 정법 2년차 쯔음? 깨달았다.
내가 했던 봉사활동은, 상대를 위해 한 행위가 아니었다. 그냥 '봉사활동 했다'는 기분을 위해 하는 것이었다. 봉사활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져서 한다는 것. 나는 이것이 그렇게 위험한 행위인지 그 때는 몰랐다. 봉사활동을 오래 하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끝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상대를 위했느냐? VS 무언가를 바랬느냐?'
나는 누구를 위해야 할까? 진정 누구를 위해야 하며, 어떤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 우선 내가 실천하고 있는 것은, ㄱ먼저 인사하기 ㄴ감사 인사 꼭 하기 ㄷ할 수 있는 일 하기 가 있다. 과거, 인사를 먼저 했을 때, 인사를 안받으면 기분이 나빴다. 그러나, '상대를 위했으면 됐지' 생각을 장착한다라고 하면, 많이 달라질 것 같다. 상대의 반응에 휘둘리는게 아닌, 확고한 내 인생의 철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니 말이다.(필자는 아직 장착 전)
'내가 한다는 것'이 아닌, '상대에게 필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기억력이 안좋아 언제든 까먹을 수 있겠지만, 계속해서 견지하도록 마음 다잡아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을 쓰는 것도 있다.
햄버거를 2개씩이나 먹으니, 배부르고 나른하다. 눈이 감기고, 하품이 절로 나온다.
7522강
https://www.youtube.com/watch?v=Tcom-T7HYJo
결론-
1)상대를 위하면 지혜를 쓸 수 있는게 인간이다
2)내가 하려고 하지 말고, 상대에게 필요한 것에다 초점을 맞춰야겠다.
3)'상대를 위했으면 됐지' 마인드를 장착해야겠다.(감정낭비 방지용)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