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 듣고 쓰기
정법, 생각의 크기, 그릇의 크기
공부생
2022. 2. 2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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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시간 6시 20분.
1. 강남을 걸으면서 정법을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왠걸? 여성 분과 부딪혔다. 본인이 다른 곳 보고 부딪혀놓고 "아 C. 미친놈인가?" 라고 괴성을 지르는게 아닌가?
따지고 싶었다. 심리적으로 벗겨버리고 싶었다. 참았다. 그리고 그냥 갔다. 걷다 보니 말할 수 없는 열패감이 들었다. '아...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한 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정법을 배워 놓고, 똑같이 대응했다면... 나는 오히려 더 후회했을 것 같다. 다행이다. 대응을 안해서...'
오늘 있었던 실제 일이다. 요즘 걷다 보면, 사람들이 많이 각박해짐을 느낀다. 오로지, 본인의 스마트폰 속으로만 관심이 있다. 물론,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며 다닌다고 해서, 꼭 바른건 아닐거라 본다. 다른 사람을 쳐다보고 다니는 아줌마 아저씨들 치고, 점잖아 보이는 분 못봤다.
2. 대체 왜 그럴까? 아마 생각의 크기 때문이 아닐까 추론해본다. 정법을 들으면서, 이런 대목이 있었다. "수체질은 성실하고 열심한데... 생각의 폭이 굉장히 좁습니다. 그런데 금체질은, 태양과 같은 포부로 살면서.. 별 것도 아닌 것에 받쳐서 폭이 좁아져버립니다. 서로를 이해해줘야 합니다"
정말 생각의 크기가, 사상체질과 관련이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얼마나 어디까지 깊은걸까? 그렇다고 모든 수체질들이 생각의 폭이 좁은건 아닐 것이다. 대략적인 통계학일거라는게 내 해석이다. 만약, 생각의 폭을 사상체질로만 관련 짓는다면, 요즘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수체질일 것이다.(필자도 수체질)
3. 기분이 매우 나빴는데, 정법을 들으니 금방 풀렸다. 스승님 목소리와 정법 법문을 들으니, 10분도 안되어 안정이 되었다. 그럼에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의문이 남았다. 또, 남들은 그냥 지나칠 것을, 나는 왜 이렇게 신경을 쓰게끔 자연이 진화시켰을까? 의문이 들었다.
코로나 때문일까?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고, 서로 개인화가 되다 보닌 그런 것일까? MZ세대로써,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아.. 내 세대이지만, 이런 꼴로 가면 나라 진짜 ㅈ되겠구나' 생각도 든다. 그래서, 더욱 나를 갖춰 이들을 위해 무언가 쓰임을 해야한다는 사명(?) 따위를 느낀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냥 감정대로 행동하고 화냈을 것이다.
스승님 법문 중에, 이런 대목도 있었다. "코로나 3년, 마스크를 쓰죠? 집 밖에 못나가죠? 언제는 그렇게 모이라고 하더만.. 이제 모이지 말라고 하죠? 왜 그럴까요? 희안한 일입니다. 조선 민족에게 칠성판을 가리게 하는 것은, 형벌 중의 무거운 형벌입니다."
"카페를 그만큼 만들어 놓고, 백화점을 그만큼 만들어 놓고, 손님이 없으면 어떻게 되냐구요? 다 문 닫을 겁니다. 백화점 50%, 나아가 70%는 문 닫게 될겁니다. 카페를 만들어 놓은건, 연구하라고 만들어 놓은겁니다. 연구소가 없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카페입니다. 그런데 카페에서 뭐하고 있읍디까? 가만히 앉아 있다가, 사진 찍고 앉아 있어요."
이 말씀에 너무 공감이 갔다. 카페 산업, 백화점 산업이 문제가 있다는게 아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써의 진화 발전을 못하고 있으니, 이런 형벌이 왔다는 취지에 매우 공감한다. 감히 공감이라는 말을 쓴다는게 웃기지만, 여튼 이해가 잘갔다. 스승님께선, 코로나를 '사람 만나지 말고, 네 생각을 다잡아라'라는 메시지로 푸셨다.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코로나 끝나면, 나는 스타가 될거니까..."
4. 진심이신지 농담이신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생각을 다잡는 시기', '스스로 공부하는 시기'라는 건 정말 맞는 것 같다. 나 또한, 이 시간 동안 공부 밖에 할게 없었다. 사람을 만날 수도 없고, 그냥 공부만 했다. 그러면서 생각의 '확장성'이 일어났다. 책을 읽으며, 정법을 들으며, 소프트웨어가 바뀌기 시작했다.
생각이 변하면, 행동이 저절로 변하는걸까? 만약, 모든 국민이 정법을 듣는다면 어떻게 될까? 모든 국민이 생각의 폭이 확장되면 어떻게 될까? 전국민의 행동 양식이 바뀔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스마트폰 보다가 부딛혀놓고 상대에게 화낼 일 따윈 일어나지 않겠지?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나의 일부로 상대를 대한다면.. 지구촌의 패러다임은 정말 바뀔 수도 있다.
정말 스승님 말씀대로 희망을 가져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