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 듣고 쓰기
정법, 인간이 사는 이유
공부생
2022. 2. 2.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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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시간 4시 29분, 낮잠을 때렸다.
오늘은 설 연휴 마지막이다. 걷기 운동 겸, 정법을 넣어 들으면서 걸었다. 그 중에, 꽂혔던 부분에 대해 생각 정리좀 해야겠다.
인간은 왜 살까? 노인에 관한 정법을 들었다. 게중에 충격적인 말씀이 있었다. "90 먹은 노인보고, '아유 정정하십니다'라고 하죠? 그 노인들은 어떨 것 같아요? 90 넘어서 그 말을 듣고, 기분 좋을 것 같아요? 앞앞이 말 못하고 고통스러울겁니다. 살아있는 시간이 곧 지옥이에요. 우린 분별을 똑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길을 다니며 나름 사람들을 관찰한다. 주로, 노인들은 멀뚱 멀뚱 하는 분들이 많다. 서울에 거리를 나와보면, 노인 분들이 참 많다. 이 분들을 보면, '아... 시간이 정말 아까운데.. 저 분들의 시간이 더 소중할텐데, 왜 저렇게 낭비하실까?' 생각이 들었다. 또, 그 분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떻게 살아가시는지가 궁금했었다.
물론, 인간의 형태를 계층별, 나이별로 구조화한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공통점이 있다. 주로, 공원 같은데 나와계시는 어른들을 보면, 그렇게 외로워 보일 수가 없다. 홀로 걷는 분이든,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이든, 4명이서 모여 계시는 할머니들이든, 그냥 즐거운 느낌은 없다.
또, 시위에 나오는 분들을 보면, 주로 할아버지 층들이 많다. 평일에 정권 교체를 부르짖으며 시위에 나오는 분들.. 이 분들 또한 나름의 이유가 있으시겠지만, 좀 안타깝다. 정말 후대를 위해서 개혁을 하겠다고 시위를 하는 거였다면, 안타깝게 느껴졌을까? 그저, 자신의 이권 또는 내면적인 허탈함을 해소하기 위해 나온 것처럼 보여지는건, 나만의 착각일까?
이 분들의 소중한 시간을 활용하고 싶어졌다. 60대 이상의 분들, 시니어로 들어가는 분들이 즐겁게 늙어갈 수는 없는걸까? 이 나이대층의 공통점은 '목표점 상실'이라는 점에 있다. 목표가 없으니 의욕도 없다. 왜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자식들은 힘들게 키워놨는데, 자식들은 이기적으로 산다. 잘못 산게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공허함이라는 감정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그런거라면, 이 분들을 어떻게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을까?
인간은 일을 하기 위해서, 이 시간을 살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 일이라는건, 각자가 모두 다르다. 그런데, 목표점이 없다면, 일을 하지 않고 은퇴를 위해 사는거라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삶이 의미가 있을까? 이 분들이 '아.. 인생을 뜻깊게 산다는건, 홍익행을 하면서 사는거야!'라고 깨달으신다면, 지금처럼 시간을 낭비하실 수 있을까?
가까이에 우리 부모님도 그러하다. '남들은 다 그렇게 사는데..'라고만 생각하시며, 생각의 발전을 도모하시지 않는다. 그런 면에 있어서 조금 안타깝다. '왜 저렇게 보수적이실까.. 나 또한 나이를 먹으면, 배움을 저버릴까? 남들과 비교하면서, 그냥 필부로 살게 될까?' 한 편으로는, 겁이 난다. 저렇게 산다는 것 자체가 끔찍하게 보인다. 미안한 말이지만 말이다.
정법을 듣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신이 만약 인간에게 생명을 준다면, 일을 할 사람에게 줄 것 같다. 돈도 마찬가지다. 일을 할 사람에게 모든 연장과, 시간과, 부수적인 것들이 들어갈 것 같다. 모든 것은 다 일을 하기 위한 연장이다. 그런데, 사람이 일을 안하려고 한다면? 내가 신이라도 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줄 이유가 없다.'
경각심이 든다. 내가 생각을 바르게 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가족 또한 그렇다. 하루 빨리 홍익의 삶을 깨달아, 바른 삶의 패턴으로 이끌어드리고 싶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드리고 싶다. '돈 있으면 기부하고 살거야'라는 말은, 참 어불성설 같다. 이 말인 즉슨, '갑으로써 칭찬 받고 싶어', '아무 것도 안하고 인정받고 싶어'라는 소리처럼 들린다. 나 또한, 황당한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모순을 깨어가야 한다.
새삼, 내가 받은 연장들에 감사함을 느낀다. 과거에는 남들과 비교만 했다. '아.. X같다. 내가 왜 이 동네에서 살아야 하지?'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조금씩 감사하기 시작했다. '이 환경을 주신 것도 감사한 것일지 몰라. 있는 것을 찾아보자' 이 환경 속에서, 내가 할 일을 제대로 했는가를 생각해보았다. 아무 것도 한 일은 없었다. 그냥 거지처럼 받기만을 바래왔던 것 같다. 이를 생각했을 때, 나는 무언가를 가질 자격이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시크릿으로 자기최면으로 욕심을 끌어당기는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런 욕심을 조금씩 자각하다보니, 보이는게 조금씩 달라진 것 같다. 누가 사기꾼인지 진짜인지, 의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기도하는 사람의 이중심리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의 생각을 셀프 검증하기 시작했다. 점점 정으로 돌아가는 것 같달까? '아 그래서 정법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삶을 부여받아, 무슨 일을 하고 갈 것인가? 무슨 일을 할 수있는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적어도,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싶다. 노인 분들이든, 아이들이든, 여성이든, 웃게 해드리고 싶다. 이 분들을 웃으며, 진정으로 인생에 도움을 드리고 싶다. 무슨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통해 인생이 풍요로워지셨으면 좋겠다. 과연 나는 그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나 스스로의 색깔을, 조금씩 밝게 만들어가고 싶다. 이기적인 생각에서, 공적인 생각으로. 남 욕하는 마음에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아는 척 하기보다는, 봐줄 줄 아는 여유있는 모습으로. 나를 만난 사람이, 조금이라도 기분이 좋아졌으면 좋겠다. 그 방향으로 삶의 시간을 써보고 싶다. 의미있게 말이다.
결국, 나는 '사람을 위해 살 때, 뜻 있는 인생이 살아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정법을 들으니, 조금씩 점점 바뀌어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