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 듣고 쓰기

정법, 싸구려와 중고 물품, 그리고 내 인생

공부생 2022. 1. 1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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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시간 4시 55분. 걷고 왔다.

 

 

오늘도 약 10~15강 정도 들은 것 같다. 그 중 가장 기억나는 부분을 정리해보려 한다. 오늘 주제는 '싸구려와 중고 물품'이다.

 

 

 

1. 싼 것만 찾는 우리 집-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싼 것만 찾는 사람들은, 절대 가난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가격 비교하고 적립하고, 그런 짓은 안하는겁니다. 싼 것 찾다가, 들어올 기회를 놓쳐버립니다. 싼 것 찾는 사람은, 싸구려 인생을 살게 됩니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나는 그동안, 항상 '가격 비교'를 하며 샀다. 물건이든, 옷이든, 무언가를 살 때, '가성비' '가격'을 제일 중요시 여겼다. 그 결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잊어버리게 되었다. 가격은 남이 정해놓은 것이고, 구매 욕구는 내 내면에 있다. 나의 니즈를 무시하고, 가격만 본 결과 내 인생은 철저히 남에게 맞춰진 인생이었던 것 같다.

 

 

문제는 나 하나가 아니라는데 있다. 나의 가족 모두가, 그런 방식으로 살아온 것이다. 할머니, 엄마 등등 대를 이어서 '가격 중심 정책'을 경제 운용 방식으로 채택해왔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은 물건 투성이였다. 안쓰는 물건을 나중에 쓴다는 명목 하에, 어마어마하게 쟁여두는 집안이었다. 중요한건, 지금 필요한 물건이나 원하는 물건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항상 나중을 위해 비축하는 행태의 삶을 살아온 것이다. 대를 이어서 말이다.

 

 

 

 

2. 미니멀리스트 중독-

 

2016년 쯤이었나? 나는 '미니멀리스트'라는 개념을 알았다. 한국에 '미니멀'이라는 개념이 퍼질 쯤이었다. 아마도, 신혼 부부나 40대 이하 젊은이들이 주로 열광했을 것이다. 나는 미니멀리스트 붐을 타고, 물건을 대거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 옷이 5개 남았을 때도 있었다. 5벌이 아니라 5개다. 그만큼 다 버렸다.

 

 

곧이어 가족의 반발이 시작되었다. '겨울에 어쩌려고 하냐' '사람이 그건 아니다' '옷이 너무 없다' 등등 우려 섞인 말을 듣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아랑곳 않고, '가재 도구'까지 손대기 시작했다. 처음엔 버리는 형태였지만, 아름다운가게라는 곳을 안 후로부터는 그곳에 기부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계속 혼났다.

 

 

나는 말했다. "그렇게 물건을 계속 쌓아두니까, 삶이 안풀리는거일지도 몰라요. 우리 안쓰는 물건은 정리하고, 좀 비우는 삶을 살아요. 엄마의 옷장을 봐요. 옷이 숨을 못쉬잖아요" 이 말을 들은 엄마는 거의 부르르 떠셨다. "너나 그렇게 살지. 나는 그렇게는 못살아"

 

 

이 말을 듣고, 정말 답답했다. 아니 한 번만 시도라도 해보면 될 것을. 왜 그렇게 비우지 못하고, 계속 쓰레기를 집안에 채우는지.. 너무 속상했다. 한 번만 내 뜻에 따라주셨으면 좋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강요할 수 없었다. 내 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물건을 더욱 더 비우기 시작했다. 버리고 또 버리고, 옷은 왠만하면 유니클로에 기부했다. 자본주의가 소비 중독을 부추긴다고 했던가? 나는 비움 중독이 되어버렸다. 계속 물건을 버리고, 거의 강박적으로 최소한이 될 때까지 버리기 시작했다. 쓰레기를 버리는 순간, 나는 카타르시스 같은 것을 느끼는 수준이 되었다.(인간의 심리도식은 변한다)

 

 

그리고 내 삶을 돌아봤다. 사실, 더 좋은 물건이 들어오진 않았다. 내 이론이 틀린걸까? 정법 스승님의 말씀이 틀린걸까? 아님 내 행동에서 어떤 모순들이 껴있었던걸까? 나는 물건을 버리고 나면 반드시 새 것이 들어올 줄 알았다. 그런데, 내 기대만큼 원하는 것은 들어오지 않았다. '대책없이 버린게' 되어버렸다.

 

 

 

 

3. 순환 이론 : 나누면 더 좋은게 온다-

 

그렇지만,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을 보면, '순환 이론'이 맞아 떨어짐을 느낀다. 돈을 잘 쓰는 사람에게 돈이 끊임없이 들어온다. 어떻게든 간에 돈이 묘하게 들어온다. 아끼는 사람보다도 더더욱 말이다. 물건 또한 나누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기회가 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식도 마찬가지고,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이 세상은 나누는 사람에게, 더 큰 것이 오는 그런 곳인 것 같이 느껴졌다.

 

 

나를 돌이켜봤을 때, 나는 무엇을 나누었을까? 길거리 노숙자들에게 적선하는 것. 전철 자리 양보하는 것. 먼저 사람에게 웃어주는 것. 인사 나누는 것. 안 입는 옷 기부하는 것 등이 생각난다. 생각해보면, 내 주위 사람들과 잘 나누었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저 멀리서 찾으려 한게 아니었나 하는 반성이 된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나누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겠거늘.. 나는 왜 그걸 몰랐을까? 가까운 사람에게는 나누기보다는 '잘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내가 못나서였던 것 같다.

 

 

학창시절, 푸근했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중학생 시절, 고등학생 시절, 반장을 하는 친구들 중 두루 잘 지내는 친구 유형이 생각났다. 이 친구들은 돈도 많고, 공부도 잘하고, 또 잘생겼다. 이 유형은 나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해줬다. 주변에 항상 사람이 많았던 공통점이 있다. 이 친구들을 떠올리면, 다른 학우와 싸웠던 기억이 없다. 잘났는데 잘난 척을 안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참 가정교육을 잘 받은게 아닌가 싶다.

 

 

그 땐, 그 친구들의 인기가 부러웠다. 20대 되어서는, 그 친구들의 가정 형편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친구들의 교육 환경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지난 이야기지만, 부러움의 기준이 이렇게 바뀐다는게 놀랍다. 결국, 어떻게 교육을 받느냐가, 인기, 돈, 사람 모두를 끌어오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 지금 생각이 옳은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렇게 안살아봤기에, 한 번 그렇게 살아보려 한다. '주위부터 나누면서' 말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