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 듣고 쓰기

정법에서 말하는 축원

공부생 2021. 12. 22. 14:53
728x90

현재시간 2시 22분, 걷고 왔다.

 

 

요즘은 걸으면서 정법을 듣는다. 10개 정도를 녹음해가서, 걸으면서 듣는다. 때문에, 걷는 시간에 다른 곳에 정신팔 일이 없다. 촌각을 허비하지 않는다는 뜻이, 조금씩 실감나는 듯 하다.

 

 

그 중 기억나는 주제는 '축원'이다.

 

 

1. 축원이 뭔가?-

 

 

정법 스승님은 말한다. "잘되게 해달라고 축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네가 평소에 가까운 사람과 하는 말이 곧 축원이다. 평소 말을 막해놓고, 주말에 종교에 가서 깨끗한 척해봤자 소용없다. 신은 속지 않는다"

 

 

나는 불교가 아니다. 축원이란 말을 잘 모른다. 맥락 상 '기도'와 같은 의미로 이해한다. 성불이니 뭐니 하는 말들도 뭔지 모른다. 그쪽 용어는, 너무 중첩되는 의미가 많아 이해하기가 어려운게 사실이다. '성불하십시오', '성불해주십시오', '공양하러 왔습니다', '공양간', '공양을 올리다' 등이 그러하다.

 

 

 

 

2. 축원을 왜 하는가?-

 

축원을 왜 하는걸까? 인간은 언제부터 축원, 기도를 신에게 올려왔던 것일까? 아마도 '신'이라는 존재를 믿는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인간은 언제부터 신을 믿어왔는가? 아마도, 원시시대 때부터였을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몰라서 무섭고 하다보니 무언가 불가항력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의존적인 성향이 키워져왔고, 그게 유일신이니 부처니 신앙이니 하는 것들일 것이다.

 

 

나는 신앙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다. 그냥 모를 뿐이다. 신앙인들의 태도를 그냥 '아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어떤 주장을 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의 말 또한 '아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인다. 솔직히 둘 다 편향되어 보이긴 한다. 그러나, 나 또한 진리를 깨달은 자가 아니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긴다.

 

 

고3 때, 친구 따라 교회를 간 적 있다. 그 친구는 평소 담배를 피는 친구였다. 욕도 많이 한다. 그런데, 교회를 매주 나간다고 한다. 교회 특성 상, 나에게 엄청나게 선교를 해댔다. 그래서 궁금해서 한 번 나가봤다. 그 친구와 예배를 함께 했다. 예배 후 그 친구는 갑자기 담배를 안폈다. 그리고 욕도 안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다음날, 학교에서 다시 만났다. 어제와는 완전 딴 판이었다. 평일의 모습과 주말의 모습이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나는 이 친구가 이중인격자로 보였다. 그땐 몰랐다. 그것이 '나를 돌아봐라'라는 신호인 것을. 지금에서야, '그것이 나의 모습일 수 있겠구나. 회개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 때는 주변에서 펼쳐지는 그런 모순들이 정말 많았다. 20대 초반 청년었던 나는, 어른들의 행동과 말에서 모순 찾아내는데 엄청난 선수(?)였던 것이다.

 

 

 

 

3. 나의 모순점-

 

 

지금 깨달은 김에, 한 번 내 모순점을 찾아내보자.

 

 

나는 그동안, 기도와 평소 모습이 어떻게 달랐는가? 평일과 주말의 모습이 다른 적이 있었는가? 달랐다면 어떻게 달랐는가? 사람들마다 대하는 모습이 틀렸던가?

 

 

1)나의 회개를 이야기하며, 모순있는 사람을 비판했다

2)비판하는 사람을 비판하며, 똑같은 짓거리를 했다.

3)종교인이나 사회 권위자들의 실수를 은근히 즐겼다.

4)사회에 이로운 역할을 하지 않으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5)기도할 때와 특정 사람을 대할 때의 모습이 달랐다.

6)특정인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신에게 '용서해달라'고 이야기했다.

7)베푸는 사람을 동경하면서, 인색한 행동을 해왔다.

 

 

 

 

4. 왜 이런 모순이 있는가?-

 

 

나는 왜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른 것일까? 생각나는데로 적고 보니, 정말 길이 먼 것처럼 느껴진다. 왜 그럴까 잠시 생각해봤더니, 그 원인은 '인간 본성'에 있는 것 같다. 여기서의 본성은 성악설에 더 가깝다. 내가 책에서 배운 바로는 이렇다. '인간은 휴리스틱을 갖고 있는 존재다. 수많은 오류와 편향을 갖고 있다. 신체와 정신 둘 다 말이다. 이것을 어떻게 바로 잡느냐가 인생을 결정한다'

 

 

나 또한 유전자의 명령을 따랐을 수도 있다는 가설이다. 이것은 '유전자 탓'과는 다르다. 정법에서 또한, '유전자가 30%정도 작용 한다'라고 했다. 이것을 바로 잡아나가는 것은, 현생에서의 시간 동안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즉, 나에게 달린 것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어떤 점에 특히 약점이 있는지에 대해 알려면, 유전자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점에서 취약한가를 알려면 말이다. 가장 쉽게 결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 '가족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가족을 본다라는 것은, 그 유전자를 보는 것이다. 어떤 습관을 갖고 있고, 어떤 결을 갖고 있는지, 어떤 심리 도식을 갖고 있는지, 생각하는 방법가지도 전통적으로 이어져온다. 이것은 선천적인 부분이다. 이를 알고 제대로 봐야, 좀 더 맞는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나의 경우, '비판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 엄마도 그렇고, 할머니도 그렇고, 거의가 비판을 잘 한다. 표현하느냐 표현하지 않느냐에 달렸지, 짜증나면 그것을 계속 비판하는데 무언가 습성이 있다. 나 또한 그렇다. 정부에 대해서 비판을 안하더라도, 종교 쪽에서 비판을 하고 있다. 그 비판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노력은 까마득히 잊은 채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 '남 욕'에 대해 조심하려고 한다. 가족의 말을 들어보면, '이렇게 비판이 많았나?'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왜 이렇게 비판을 많이 해?"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바라본다. 그 또한, 내가 말로 해서 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묵묵히 내 공부를 하고 있으면, 옆 사람은 아마 알 것이다. 정법에서는 그렇게 말했다.

 

 

 

 

5. 마무리-

 

 

정법에서는 축원하지 말라고 한다. 축원의 이치를 알고 하라고 한다. 축원의 이치란, 평소 지인들에게 하는 말을 똑바로 하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지인을 존중하고 잘 대해야만 한다. 정법이라는 것이 이런걸까? 나 또한, 무슨 말을 할 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계속해서 실수하고 후회하고 다짐하지만 말이다.

 

 

축원에 대해 이야기하니, 결국 '말의 중요성'으로 끝나게 된다. 정리해보겠다.

 

 

정리-

 

1)축원을 해놓고서, 평소 말을 잘못하면 아무런 소용없다.

 

2)말조심 해야겠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