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 듣고 쓰기
정법, 묵언수행.. 나는 '새로 다시'였을까?
공부생
2021. 12. 20.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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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시간 10시 34분, 방금 정법을 들었다.
정법이 나온지 거의 10년이 된 것 같다. 9년 전 영상을 봤으니 말이다. 강의 회차 숫자가 2자리 수다. 정법 스승님도 지금보다는 검은 머리가 더 많으시고, 피부도 뭔가 더 활력있어 보이신다.
'묵언'이라는 주제였다. 묵언. 나는 묵언이 뭔지 모른다. 침묵과 묵언. 나는 그런 것을 따로 배워본 적은 없다. 단, '자기 표현시대' '자기 PR시대' 같은 이야기는 들어봤다. 내 세대가 디지털이다보니, 묵언보다는 표현하는 법에 대해서 먼저 배웠다. 그러나, 나는 워낙 할머니한테 혼나면서 자란 터라, 내 표현을 잘 못한다. 이는 묵언과는 다른 것이 아닐까 싶다.
내 폰 바탕화면엔, '알면서 몰라라'가 적혀있다. 이게 묵언이랑 무슨 관련일까? 정법을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면, 충분히 그런 질문도 할만 하다. 정법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묵언은 말을 안하는게 아니다. 사람이 왔으면 인사하고 존중하는게 당연한 예절이다. 단, 아는 척을 하지 마라"
1. 묵언 수행의 의미-
'알면서 몰라라 = 아는 척을 하지 마라 = 묵언수행'
내 개념으로는 위 3가지를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맞을까? 이 또한, '나는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한 질문이다. 항상 나는, 내가 아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이 한 말에 대해서도, 곧이 곧대로 믿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그렇게 살다보니, 과거보다는 훨씬 가벼움이 사라진 기분이랄까? 뭔가 그런게 있다.
묵언수행을 왜 할까? 나는 위빠사나 10일 코스를 5번 다녀왔다. 거기선 10일간 묵언 수행을 시킨다. 가끔 아저씨들이 적응을 못해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3~4일 차에 말이다. 그걸 못견디고 가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대다수는, 묵언을 잘 지키고 10일의 시간을 잘 버텨낸다. 그런 사람들을 관찰하면, 정말 대단해보인다.
10일이 지나고, 그 다음 날.. 아침 식사 후 묵언이 풀린다. 사람들은 반나절만에 전부 돌변한다. 아니, 숨겨왔던 그 본성이 나온 것일까? 왁자지껄 난리도 난리도 없다. 한 가지 재밌는 점은, 도인처럼 앉아있던 아저씨가 '불교 수행 박사'로 변하는 순간이다. 나는 5번 내내 그런 아저씨들을 봐왔고,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솔직히 말해, 묵언이 안풀렸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은 소통하며 지내는 존재다. 서로 말로써 에너지를 주고 받아야 한다. 적어도 정법에서는 그래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묵언을 왜 하라는걸까하는 의문이 초기에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묵언은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왜 그럴까?
2. 묵언의 필요성-
-묵언이 필요한 이유
A.더 정확한 답을 얻기 위해서
B.더 정확한 분별력을 얻기 위해서
C.상대에게 신용을 얻기 위해서
D.에너지가 저절로 차기 위해서
내가 이해한 바로는, 위와 같다. 내가 모르는 묵언의 혜택이 더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묵언을 시작하면 반드시 '시험지'가 들어온다는데 동의한다. 어제 또한, 내 앞에서 '같지도 않은 이야기'가 오갔다. 다행히 휴대폰에 적은 '알면서 몰라라'를 견지해 아는 척을 피해갔다. 그러나, 그 다음에 또 무언가 주제가 나와 "이건 ~가 아닐까?"라고 넌지시 던졌다.(나는 항상 단언보다는 여지를 남겨두는 버릇이 있다)
그런데 정법을 듣고 보니, 이 또한 묵언이 깨진 것이다. 아니 스스로 깬 것이다. 말 그대로 입을 닫았어야 했다. 답이라고 내든, 여지를 주든 간에, 상대가 묻지 않은 말에 답을 했다. 잣대를 '상대가 물었는가'로 놓았을 때, 나는 여지없이 걸린다. 어찌보면, 나는 계속해서 뭔가 잘난 척을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역사에 대해 조금 안다. 그래서 역사나 정치 이야기가 나올 때면, 항상 뭔가 통찰이 떠오른다. 현재 정치와 과거 있었던 동양사나 서양사의 인간사와 별다를 바가 없이 느껴진다. 그래서 장광설을 나도 모르게 늘어놓곤 한다. 중요한 건, 상대가 물어보지도 않은 말인데 말이다. 이야기가 1분 이상 넘어갈 때면, 상대방의 입이 어색해짐을 느끼곤 한다. 즉, 지루해진 것이다.
한 편으론 궁금하다. 인간은 왜 이렇게 설계가 된 것일까? '말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본능이 있는 것 같다. 나를 포함해,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산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이병철', '이건희', '김종필', '신격호', '인조', '세조'가 있다. 내가 아는 한은 그렇다. 이들의 과거 이야기를 보면, 하나같이 '말이 없었다'라고 적혀있다.
정법 스승님이 말씀하셨다. 입을 닫으면 내공이 쌓인다고. 답이라고 내놓지 않으면, 내공이 쌓인다고 하셨다. 가장 좋은 곳이 사람 많은 시장통이라고 하셨다. 3년간, 입을 닫고 보고 듣는다면, 내공이 어마어마하게 쌓인다고 하셨다. 어쩌면, '며느리 벙어리 3년, 봉사 3년, 귀머거리 3년(?)'과 비슷한 맥락이겠다.
정법 스승님은 또 말씀하신다. 묵언 수행을 몇 일을 정해놓고 하는 것은 욕심이라고. 그 욕심 때문에, 반드시 시험지가 들어와 다 걸린다고. 묵언에 성공하려면, 바른 방법으로 해야한다고 추가로 말씀하셨다. 바른 방법이란 무엇일까?
3. 묵언의 방법-
-묵언의 바른 방법
A.묵언 수행에 들어가지 않는다
B.나의 못남을 알고 입을 닫는다
C.상대를 증오하거나 삐쭉거리지 않는다
나는 A와 B를 시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C의 경우 계속 걸렸던 것 같다. 어떤 상대가 X같은 행동을 했을 때, 그것을 보고 못참아하는 것이 있었다. 그런 경우가 아주 많았다. 그 이유가 뭘까? B를 견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못났다'라는게 아니라, "저 XX를 어떻게 조질까?"라는 생각으로 흘러갔던 것이다.
최근, 나는 소음 문제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이것 때문에, 1년 이상 고생을 했고, 오늘 또한 매우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는 1년 이상 별의별 시도를 다 해봤고, 경찰 또한 해결 방법이 될 수 없었다. 공무원, 경찰, 빌라 관리인, 고층 민원센터, 층간 조정센터, 국민신문고, 114까지 모든 조치를 다 취했다. 직접 쪽지를 써서 붙이기도 하고, 소리도 질러보고 별 짓을 다했다. 그런데도 상황은 더 악화가 되었다. 나는 돌아버릴 것 같았다.
정법을 안들었으면, 나는 진짜 돌아버렸을지 모른다. 2주 전 소음의 진원 가구가 이사나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똑같은 소음을 일으키는 가구가 들어왔다. 나는 미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오늘, 옆집이 이사나갔다. 그리고 새로 이사왔는데, 더 시끄럽다. 기도까지 했는데 말이다. 솔직히 지금도 머리가 아프다.
나는 오늘 생각했다. 대체 내가 왜 이런 환경에 있어야 하는걸까? 뭘 배워야 하는걸까?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분명, 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신이 모를리가 없을텐데, 왜 이런 곳에서 있는걸까? 내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걸까?
과거 7년 전, 나도 모르게 일으켰던 소음의 인과를 지금 받는걸까? 나는 가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행동들이, 누군가에게 피해가 되었던걸까?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한다. 정법을 들었을 때, 대자연은 반드시 틀리게 운용안한다는 전제 하에서 생각해본 결과다.
'나는 못났다' 베이스를 깔고 생각하니, 옛날처럼 분노가 심하게 올라오진 않는다. 단,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두통도 있고, 매우 정신이 예민한 상태다. 그러나, 이 환경을 주신 신의 뜻을 한 번 수용해보는 노력을 처음으로 해보는 중이다. 상대를 탓하거나 억울함을 토로해봤자,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이제 그냥 포기 상태로, 한 번 지켜보는 단계가 된 것 같다.
어찌되었든, 이 또한 묵언 아닌 묵언이다. 강제 묵언이랄까? 어떠한 환경이 들어왔고, 그 환경에 반응하지 않는 것. 그냥 수용하는 것. 한 편으론, 이런 힘든 환경이 나중에 나에게 에너지로 쌓여있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 뭐 이유가 있으니 이런 환경이 있겠지.
머리가 뜨겁다. 매우 횡설수설 한 것 같다. 정리를 요연하게 해볼까?
1)묵언수행=아는 척 하지 마라=알면서 몰라라
2)묵언을 하려면, 묵언수행에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3)'나는 못났다'는 정체성으로, 겸손하게 환경을 수용하자